1960년 4월 19일, 4.19 혁명을 기억해주세요.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국민일보

한국의 현실적 문제를 다룬 ‘신동엽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 ‘껍데기의 가라’의 일부분이다.

시에 나온 ‘사월’ 이라는 단어가 있기에 나는 이 시가 ‘4.19 혁명’에 대한 시라고 생각한다. 2019년 4월 19일. 59년 전 오늘은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을 했던 바로 그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4.19 혁명이라고 하면 어떤 것에 있어서 벗어나기 위해 운동을 했다는 것에 대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다 4.19혁명이 일어났는지에 대핸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 ⓒ스트레이트뉴스

1960년 3월 부정선거가 일어났다. 이 때 많은 공무원들이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을 위하여 동원되었다. 내무부와 각 도의 경찰이 실질적인 선거본부가 되어 투표 총계를 조작하고 날조하였다. 선거 결과 이승만은 총 투표수에서 당선에 필요한 득표 수 3분의 1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표를 얻었다. 국회에서는 민주당 선거가 ‘불법적이고 무효’ 라고 주장하였다. 국회에서도 불법적이고 무효라고 하는데 그걸 뜬 눈으로 보고 있어야 하는 국민들은 오죽 했을까? 선거 전 후 전국에 걸쳐 대도시에서 반정부시위가 일어났다. 그들은 부정선거와 불법선거를 규탄했다.

▲ ⓒ조선일보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이승만과 이승만을 따르는 그들, 투표 총계를 조작한 내무부와 각 도의 경찰, 시위대를 폭력으로 체포한 경찰들을 표현했을 것이다. ‘알맹이’는 4.19혁명을 이끌어 나갔던 학생, 시민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동엽은 왜 잘못된 정부, 경찰들은 껍데기라고 표현했고 그들에게 저항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알맹이라고 표현했을까? 보통 우리가 껍데기, 알맹이를 표현 할 때는 ‘과일’을 말할 때 많이 쓰는 단어이다. 과일 중 귤을 예로 들자면 우리는 귤의 껍데기를 까서 알맹이만 먹는다. 왜? 알맹이가 맛있고 알맹이가 가장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럼 껍데기는 어떨까? 귤 껍데기는 귤을 까고 버리지 않는가? 우리가 귤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를 까고 버리는 이유는 필요 없는 ‘쓰레기’ 이기 때문이다. 즉, 신동엽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마치 귤의 껍데기처럼 ‘정부, 경찰’은 그들이 잘못됐다고 맞서는 알맹이인 ‘국민’에게는 필요도 없는 쓰레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4.19일, 지나갈 수도 있을 4.19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혁명이 있었기 때문에 독재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만약 이 혁명이 없었다면 우리는 독재적인 정부에서 자신이 원하는 미래는 꿈 꿀 수도 없고 그저 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미래에서 살았을 것이다. 내년에도 4월 19일은 또 온다. 또 오기 때문에 그저 그런 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혁명을 이끈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4월 19일 만큼은 기억하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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