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만약은 없다>

한창 학비를 벌기 위해서 여러 아르바이트에 열중할 때가 있었다. 처음으로 이 책을 발견한 그날은, 카페에서 일하다가 휴게실에서 짧지만 소중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모바일로 웹서핑하던 중 우연히 짧은 칼럼 형식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글의 내용은 교통사고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온 엄마와 가족의 이야기였는데, 드라마에서조차 느끼기 힘든 생동감과 현실감에 내가 응급실 CCTV가 된 마냥 상황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눈은 빠르게 글을 따라 굴렀고, 육체적 노동에 익숙해져 굳어져 있던 뇌가 돌아가면서 아주 흥미롭고 즐거웠다. 휴식시간이 끝나갈 무렵 아쉽지만 짧게 끝마친 글을 뒤로하고, ‘도대체 어떤 작가가 이런 글을 쓴 걸까? 이 글의 출처가 어딜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 글이 바로 응급실 의사가 쓴 책 ‘만약은 없다’였다.

 

▲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혼잡한 응급실의 상황들 ⓒpixabay

 

응급실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는 바로 책을 찾아보지 못했다. 바쁜 현실에 ‘나중에’라는 핑계와 얕은 기억력 때문에 책 읽기의 즐거움은 잊혀가는 듯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현실에서 있어서는 안 될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강서구 PC 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에게 칼로 수십 차례 찔리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후 범인은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정신병 이력을 내세웠고 이에 형량이 줄어들까 국민은 분노했다. 그때 SNS 상에서 누군가 글을 올렸는데, 피해자를 치료한 의사가 이런 끔찍하고 극악무도한 사건에서 정신병으로 형량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힘을 보태기 위한 글이었다. 의사가 작성한 글에 많은 사람은 공감했고, 나는 이 글을 읽고 뭔가 낯익은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서 혹시나 찾아보니 예전에 읽었던 그 책을 쓴 응급실 의사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던 일을 제쳐놓고 또다시 잊기 전에 당장 그때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만약은 없다> ⓒ인터파크

 

앞서 언급했듯이 ‘만약은 없다’는 응급의학과 의사이자 작가인 남궁인이 쓴 수필 책이다. 실제 응급의학과 의사가 작성했기 때문에 응급실에서 의사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감정의 사투를 벌이는지 엿볼 수 있다. 책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의 기록과 같은 무거운 주제부터 의사이기 때문에 알아챌 수 있는 재미있는 상황 같은 가벼운 주제까지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응급실을 거쳐 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의사가 직업적으로 어떤 딜레마를 가졌는지 까지 솔직하게 서술해준다.

 

 

보통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삶이 바쁘면 글이 읽히지 않고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예외였다. 흡입력이 있어서 종일 책을 붙들고 있게 만들었고, 마침내 하던 일들을 제쳐놓고 하루 만에 완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주변인들에게 적극 추천하며 다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책을 읽고 싶지만 잘 읽히지 않는다면, 당장 ‘만약은 없다’를 읽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책을 읽게 된다면 왜 책의 제목이 ‘만약은 없다’인지 읽으면서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괜찮은 독서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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