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사건의 모든 것을 주도한 미국

▲ 출처: 뉴시스 신효령 기자

 '제주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절경을 떠올릴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관광지로서 아주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제주도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슬픈 역사가 있다. 바로 1948년에 일어난 제주 4·3사건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북쪽은 소련의 지배하에, 남쪽은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전부터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가 심화되고 있었던 상황인 만큼, 한반도에서도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치열했다. 더불어 해방 이후 극심한 흉년과 식량난을 겪고, 일제강점기 때 친일을 일삼았던 경찰이 미군정의 군정 경찰로 그대로 활동하는 등 제주 민심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실시하려했다. 한반도에서 인구 비례에 의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의견이 소련에 의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그러나 미군정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있었던 제주도 사람들과 제주도청을 비롯한 여러 기관 및 단체들은 이를 막기 위해 총파업에 돌입했고, 그 중심에 있었던 남로당은 단독 선거를 막기 위한 무장대를 조직해 1948년 4월부터 대대적인 투쟁에 들어갔다.

 

▲ 출처: 프레시안 '제주의 소리' 좌용철 기자

이에 정부는 '불온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 으로 규정하여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동시에 정부의 뒤에서 입김을 불어넣던 미군정은 파견하는 군인과 경찰의 수를 늘리고, 우익청년단을 적극 지원하며 '백색 테러' 를 단행했다. 이렇게 미군정의 힘을 등에 업은 정부와 남로당을 비롯한 좌익 세력들의 대립은 1954년 9월까지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사상자 수는 무려 2만 5천명에서 3만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희생자의 수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추정된 것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그 수가 8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또한, 희생자 중에는 남로당의 무장대와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우익 세력의 청년단과 극우단체 및 군경토벌대에 의한 희생자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출처: 충청뉴스 김윤아 기자

사실, 제주 4·3 사건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제주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무리들의 무장 봉기가 진압된 사건' 으로 알고 있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모든 게 미국의 의도대로 흘러갔다는 것과 미군정이 남쪽에 들어오기 전까진 '공산주의는 나쁘다' 라는 인식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공산주의를 몰아내야 한다' 라는 명분 하나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욕심과 아무것도 모르고 미군정에 협력했던 무능한 정부로 인해서 죽어간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미국이 우리의 친구이자 영원한 동맹국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어두운 면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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