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중요한 해로 기억이 되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이 해이기도 하며 임시정부 수립을 한지 100주년이기도 한 2019년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날도 있다. 한국에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고려가 2018년 건국한지 1100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하고 있지는 않다. 불교는 고려에 있어서 몽골이 공격하였을 때에도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자 만든 것이 흔히 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팔만대장경으로서 불교에 대해서 계급에 상관없이 고려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불교가 고려에 있어서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고 국가의 종교이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기억을 하고 있는 고려의 절에서 금강사는 없었다.
 

기억 속에서 사라진 금강사
 

  ▲ ⓒ(재)한국문물연구원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시작하여 많은 불교의 유물들이 출토가 되고 있는 지역이다. 금강사 터는 경상북도의 영주시 평은면에 위치한 금광리에서 발견되었고 주변에는 내성천이 u자 모양으로 굽이쳐 흐르는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금광이라는 이름은 내성천의 물결이 모래와 같이 반짝이고 비단 같다고 하여 불린 것이며 일대에 영주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675기에 달하는 유물이 확인이 되었으며 고려 시대의 유물터에서 광명대의 명문을 통해 이곳에 금강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이 되었고 이번 전시회에는 출토품 34점이 전시되고 있다.

 

고려시대 불교를 의지했던 백성들의 삶 
 

▲ ⓒ김홍준

  34점의 유물들은 국가의 종교로 불교가 인정받았기 때문에 화려하고 거대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당시 백성들의 삶의 녹아있는 듯한 유물들이 전시가 되어 있으면서 고려 시대의 불교가 국가 종교로 계급이 높은 사람들만 믿는 종교가 아니라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계층이 불교를 믿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전시회를 통해서 고려 시대의 불교에 대해서 보여 주고 있었다.

 

     ▲ ⓒ김홍준

  금강사가 존재를 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유물이 바로 광명대이다. 고려 시대 당시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지며 초를 끼울 수 있는 원통형 받침을 지닌 것과 상부가 평평하게 된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져 있다. 금강사에서 발견된 광명대는 후자에 가까우며 등좌와 간주, 간주좌로 나누어진 형태를 띠고 있는 모습은 고려 시대 의미가 깊었던 불교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었다.

 

 

 

  고려와 불교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떠오르며 한국에 유명한 절을 생각하면 부석사, 봉정사를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지만 금강사는 그 어디에도 기억을 하는 사람이 없다. 이번 전시회가 아니었다면 고려의 금강사에 대해서 알릴 수 있는 시간조차도 없었을 수도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기억을 하는 것이 역사만 아닌 해당 시대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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