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나는 어릴 적 부모님께서 들려주시던 일화가 생각났다. 강원도 속초가 고향이신 부모님은 군인이 학교에 들어와서 반공교육을 실시했고 교련학습 등을 배웠다고 말씀해 주시며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장점들과 북한은 이만큼 경제적으로 부유하니 넘어오라는 전단 일명 ‘삐라’를 많이 주워가면 학용품은 물론 상장, 돈, 음식을 줬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어머니께선 북한사람들을 TV로 처음 접했을 때 매우 놀랐다고 하셨다. 초등학교에서는 북한 사람들을 모두 도깨비와 같이 흉측하고 무섭게 생긴 사람들이라고 가르쳤고 미술대회에서도 북한사람들을 도깨비로 그렸었다고 한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부모님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 [출처 : 연합뉴스]

 반공영화를 통한 한국 사람들의 정체성은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을 바탕으로 한 냉전, 그들이 둘러싸고 있던 남북전쟁이 끝난 후의 미국의 반공정책으로 인해 점점 쌓여 갔다. 식민지 시기부터 형성된 반공주의는 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 라는 국가 정체성과 동일시되며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이분법적 질서를 구축했다. 군대, 관공서, 경찰 등의 국가기구에서 한국전쟁 시기부터 국방부 정훈구, 공보처에서 전쟁의 공식일지를 작성하였고, 자서전과 수기형태로 참전군인, 전향 간첩, 인민군 전향자들의 이야기를 유통하며 말 그대로 공산주의의 뿌리를 자라지도 못하게 만들며 한국전쟁에 대한 담론을 생산했다. 또 반민 반관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 문화 예술 분야에서는 반공 물을 공연하고 제작하였다. 또 저번 시간에 배운 문화정치 중에서도 언급했듯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TV는 물론 낮은 보급률의 라디오, 높은 문맹률을 자랑하고 있던 한국에는 영화만 한 매체가 없었다. 정말로 그 시대에는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큰 취미이자 여가 활동이었다. 이러한 영화들은 미 공보원에 소속된 해군 촬영대, 육군본부 촬영대, 공군 촬영대, 국방부 정훈구 촬영대 등 국가기구에서 영화를 직접 제작하였고 기자재 후원이나 촬영협조 등 다양한 후원으로 영화 제작을 지원했다. 이는 영화 제작이 미 공보원 USIA가 개입하였고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를 규율하던 미국화와 반공주의가 점차 증가하며 영향력 역시 증가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나는 군대 시절 보았고 감명 깊게 보았던 ‘인천 상륙작전’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반공에 가까운 영화였던 것 같다. 군대에선 철저히 반공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되었던 정혼시간의 북한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시간이 3시간씩 있었다. 그리고 문화의 날이라고 해서 1년에 한 번 영화를 보여주는 날 역시 ‘인천 상륙작전’이라는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 영화에서는 북한군을 담당하고 있던 배우 이범수의 악랄함을 서슴없이 보여줬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념을 위해 인륜을 저버리며 무고한 대한민국 시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무조건 죽이는 등 악랄함과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국군은 매우 신성하고 깊은 전우애와 인간미 넘치는 모습과 잔인하게 죽어가면서도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며 희생된다. 여기서 정확히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읜지, 공산주의자들의 악랄함과 무지함, 반인류적인 모습을 통해 공산주의에 대한 악랄함을 표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미군들은 더는 물러날 길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한국을 도와주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고 그들의 원조와 희생은 다시 한 번 내가 왜 군대에 와야 하는지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을 하는 건지 북한군을 만났을 땐 연민의 감정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자신감과 우리나라의 충성심이 생겼었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이 영화를 보았던 많은 국민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700만이라는 관객 수를 동원할 정도로 흥행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악랄함을 표현했고 어린 학생들의 희생, 국가를 위해 뭉친 학도병의 영웅적 모습을 담은 영화인 ‘포화 속으로’(2010), 인천 상륙작전(2016)의 공통점이 있다. ‘포화 속으로’라는 영화는 2010년 당시 한나라당이었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 등장했고 ‘인천 상륙작전’ 역시 새누리당이었던 박근혜 정부 시절에 등장했다. 이 시절은 미국과의 FTA 협상, 맥아더 장군 동상 이야기 등 미국과 매우 우호적인 경제활동을 바탕이 되었고 북한의 핵실험 역시 모두 이때 발생하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리고 미국에서 제작한 MARBLE 영화 역시 국내 시장으로 들어오며 인기를 끌었던 시기와도 맞물린다. 지금까지의 교과서에서도 6·25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북한의 잔인하고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라고 배운다. 이러한 과정들은 저번 시간과 연관이 있다. 북한의 핵실험을 통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원성 권력을 통해 주었고, 교과서에 실린 인천 상륙작전과 한국사 책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Smart Power가 작용하였으며 영화나 다큐멘터리, 다양한 SNS를 통해 6·25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국군 용사와 이산가족들의 비극을 통한 Soft Power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수업시간에 보았던 미국에서 문재인 타도를 외쳤던 기성세대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북한을 그렇게도 싫어하는지, 무엇 때문에 북한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격분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나 역시도 부모님과 같이 반공교육, 교련학습, 반공 웅변대회에 참여하며 이러한 영화들만 접했다면 나 역시도 시위를 벌였던 사람들 사이에 서 있을 것이다. 진정한 ‘나’는 만들어진 것인지 만들어가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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