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과목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 날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기록 된 그 날을 공부하며 항상 궁금증이 있었다. 그 날,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1980년 5월 18일도 그랬다. 보통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적인 날로 기억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엔 그 날, 많은 시민들의 피가 아스파트 바닥을 적셨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갔던 5.18기념문화센터를 기억한다. 군인의 묵직하고 날카로운 곤봉에 힘없이 무너진 사람과 그 날을 기록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쓴 일기장, 당시 생생했던 증언들을 눈에 담았다. ‘소년이 온다’는 그 날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외쳤던 평범한 ‘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출처 - YES24

 ‘소년이 온다’는 한강 작가가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한 책이다. 한강 작가에게 5월 18일은 특별한 날이자 잊지 못하는 날이다. 주인공 동호의 이야기는 실제로 작가가 열 살 때 어른들을 통해 엿들었던 이야기다. 한강 작가는 이를 계기로 소설을 쓰게 된다. 책에서 등장하는 ‘너’는 동호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오늘 날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며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를 지칭한다. 동호의 기억, 그리고 평범한 이들의 기억과 아픔을 함께 느낀다.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과 힘에 분노하고, 고문의 후유증과 그 기억으로 힘겨워 하는 장면을 보면 먹먹해진다. 혼이 된 이들은 서로를 알 수 없지만 서로를 위로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 내용이 있는데 혼이 된 아들을 대신해 민주주의를 외치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어머니를 포함한 광주 시민들은 평화롭게 행동하고 연대한다. 어느 누구도 그만하라고 말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누군가가 총에 맞고 쓰러지면 얼른 달려가서 안전한 곳으로 이끈다.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시신을 닦고 촛농이 꺼지면 어두워지지 않게 다시 밝혀준다. 귀가 찢어질 거 같은 총소리에 두려움을 떨면 귀와 눈을 막아준다. 그 상황이 두렵고 무서워서 도망을 가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 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 출처 - 5.18 기념재단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5.18 당시 헬기사격을 했다는 보도에 이어 당시 군인들이 여성에게 성폭행을 했다는 기사를 보면 감정적으로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사과하지 않는다. 여전히 역사는 살아 숨 쉬고 있는데 말이다. 그 날의 뜨거움과 함께 혼이 되어버린 이들을 위해, 그 혼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5.18 민주화운동은 기억되어야 할 것이고 잊어서는 안 될 역사다. 우리도 그들을 기억하고 공감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진곡을 불러야한다. 잊지 않게, 잊혀 지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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