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기있다

지난 6일 사회과학대학 4층 전시물이 훼손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작품전시는 소수자 사회학 수업의 프로젝트로 사회 속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문제 인식을 위해 장애인’ ‘이주노동자’ ‘탈북자’ ‘성소수자’ ‘남녀 성차별’을 주제로 5개의 전시가 진행됐다. 성소수자가 주제인 ‘우리는 여기에 있다’ 작품과 남녀 성차별의 ‘Gender Sensibility’ 작품은 직접 전시에 참여할 수 있는 작품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4일 설치한 ‘성소수자’와 ‘남녀 성차별’을 전시물이 이틀 만에 도난당했으며 원래 전시물이 놓인 자리에는 차별을 조장하는 유인물이 대신 놓여 있었다.

작품대신 놓여있던 유인물 ⓒ유인종

이 사건은 작품에 대한 테러다. 전시물은 모두 사회과학대의 허락을 받은 정당한 전시물이었다(게시물에 승인도장까지 찍혀있었다). 물론 작품이 주는 내용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다수가 오랫동안 옳다 생각하는 여태까지 생각해 본적 없던 담론에 의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편함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던 차별적인 인식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말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을까? 정당한 방법과 절차로 반박 내용을 게시했다면 이를 접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생각거리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통 창구의 훼손은 매우 폭력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소수자 프로젝트가 말하고 싶던 ‘이성애’와 ‘가부장적 남성’이 가지고 있던 ‘다수’ 또는 ‘권력자’의 폭력이 여실히 드러난 하나의 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 행위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문제해결법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전시물 ⓒ'우리는 여기있다'

누구도 표현의 자유를 막을 수 없다. 또, 누구도 의견의 표출을 막을 수 없다. 파손된 작품의 작가는 이번 작품 테러 사건을 추가해서 다시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이 훼손되면 또 다시 만들겠다고 한다. 만일 작품이 다시 만들어지고 주목 받으면 사람들의 차별적인 의식에 다시 물음을 던질 것이다. 계란이 아무리 약해도 병아리로 태어나 바위를 넘듯이 누군가 폭력을 행하더라도 여전히 남아 목소리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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