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릴레이 시나리오

▲ ⓒ세계일보

 

"아빠 아는 분이 대일기업 직원 분이셔서 추천서 받았지."

 

실없이 웃는 얼굴을 멍하니 지켜봤다. 면접 팁이라던가, 어떤 자격증을 땄다던가. 그런 대답을 원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힘없는 나를 더욱 축 처지게 만들었다. 너는 어디 다니는데? 이미 식어빠진 아메리카노를 들이마시며 조금 째진 눈이 번뜩였다. 아... 나는.

 

"아 잠시만, 나 대리님한테 전화와서."

 

아, 네. 대리님. 말을 하다말고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자리를 피했다. 바보처럼 입을 살짝 벌린 채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입을 꾹 다물었다. 가만히 앉아 내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이켰다. 쓰다. 마실 줄도 모르면서 제일 싼 커피를 시킨 내 마음이 썼고, 커피도 썼다.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테이블에 그대로 올려뒀다.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의욕이 떨어진다.

 

"아 주말에도 이렇게 사람을 부른다니까? 어, 그래서 어디 다니는데?"

"아... 나는 아직."

 

뒷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으며 자리에 앉아 투덜거리는 얼굴을 쳐다봤다. 아, 그래? 뭐 곧 취업되겠지.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아무렇지 않게 마시며 입꼬리를 슬쩍 올리는 모습이 부럽고, 샘이 났다. 낙하산 주제에 속도 편하게 말하네. 열등감에 사로잡혀 주먹을 꽉 쥐었다.

 

"야 그래도 네가 좋을 때지. 회사 다니면 이렇게 나올 시간도 없다, 진짜."

 

그건 네가 직장인이니까 그렇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이 입속에서 이물질처럼 맴돌았다.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고 싶었던 말들을 꾹 눌러담고 무의미한 대답을 뱉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걸었던 것 같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저런 놈도 취업을 하는데. 비난의 화살은 낯선 곳에서 불어온 바람을 맞고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우리 부모님은 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러나 한 번 시작된 생각은 걷잡을 수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이제 오니?"

 

언제나처럼 들리는 어머니의 인사와 아버지의 인사가 오늘따라 무거웠다. 네. 힘없이 대답을 하고 방으로 곧장 들어가려 몸을 틀자 소파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를 단단히 옭아맸다.

 

"그 친구는 뭐래디?"

 

울컥. 하루종일 속에서 눌러온 감정이 수면위로 끄집어 올려졌다.

 

 

 
저작권자 © MC (엠씨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