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대한민국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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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이제 막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던 꽃이 힘없이 꺾여버렸다. 배우 장자연의 자살 사건이다. 신인배우였던 그녀는 갑을 관계 속에서 소속사 대표와 사회 고위층 인사들과의 성접대로 인해 결국 4장의 유서를 남겨둔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10년이 지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20만이 넘기면서 재수사에 대한 움직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전에도 사건에 대한 재수사 촉구가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압력들에 의해 금방 잊혀졌다.

며칠 전 MBC PD수첩에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탐사보도를 통해 다시 한번 수면위로 떠올렸다. 필자는 이 사건을 통해 현실에서 돈, 즉 자본이 가지는 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힘 알게 되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극히 불공정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 적반하장

2009년 장자연 문건이 공개되면서 가장 먼저 세간에 떠오른 인물은 직접적인 성추행을 했다고 문건에 기록된 조선일보 조희천 기자이다. 당시 조희천 기자는 성폭력 혐의를 받았지만, 아내가 검사라는 이유로 경찰은 눈치만 보며 피의자에 대한 수사를 소심하게 진행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조선일보에서 퇴사해 정치권으로 뛰어드는 등 죄에 대한 처벌없이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하였다.

얼마 전 탐사보도팀에서 직접적인 말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하고 물음을 던졌는데 피하기에 급급하고 오히려 기자와 PD를 고소하겠다며 당당한 모습까지 보였다.

 

▶ 경찰,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

접대는 국내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이루어졌다. 골프, 술접대 등 장자연 문건과 기록들을 보면 기업사장부터해서 법조계, 방송계 등 해외에서도 쟁쟁한 재벌가들, 업계 고위층들과 함께한 정황들이 들어났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해외에 갔다 온 후 고인과 고인의 가족들에게 1000만원 상당의 수표가 수차례 입금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대가성 입금이 의심되는데, 경찰은 이런 상황들에 대해서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당사자들의 ‘불쌍해서 줬다’라고 하는 진술에 대한 진실여부를 고인에게는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결론 내린다.

독립적이지 못한 경찰이라는 기관이 문제일까, 아니면 경찰의 개인의식과 양심이 문제일까? 사법농단에 이어 우리나라의 법과 치안은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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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유착, 누가 갑이고 을인가?

정경유착, 말 그대로 정치와 경제가 유착되어있다는 말이다. 흔히 정치권에서 어떤 사건들이 발생하면 그 배후에는 대부분이 돈과 자본, 즉 경제와 관련되어있다. 이것은 한국사회에 이미 너무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여서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필자는 정경유착을 생각할 때 정치와 경제의 관계 속에서 그래도 정치에서 좀 더 힘을 더 가지고 경제를 통제하고 끌고 간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건이나 상황에 따라 관계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장자연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그런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권력이라는 것도 돈과 자본을 가진 사람과 기관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9년 당시 이종걸 의원은 장자연 사건 문건에 공개된 조선일보 방사장을 거론하면서 눈치 보기에 급급한 국회의원과 고위직 인사들을 비판하였다. 그러자 얼마 후 조선일보 기자가 찾아오면서 무언의 압박과 언론을 통해서 이종걸 의원에 대한 협박을 시작했다. 또한 당시 이종걸 의원의 발언들을 보도한 KBS, MBC에게 조선일보는 10억원 상당의 소송을 제기하며 장자연 문건에 대한 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부정한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거짓발언을 할 경우 우리도 참을 수 없다며 보복하겠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기사와 칼럼을 지속적으로 내보냈다. 이종걸 의원은 당시 3선 국회의원에 제1야당 원내대표까지 한 정치인이지만, 거대한 언론사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 국민청원 20만 돌파 …'장자연 사건' 진실 밝혀지나 (MBC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 정의로운 대한민국

필자는 장자연 사건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절대 공정하고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법이라는 존재가 장난감인 것일까. 자기 마음대로 지키지 않고, 악용하며 자신을 보호한다. 이미 법치주의 국가에서 헌법이 가지는 힘이 권력자들 앞에서 무너졌다.

밝고 열정 넘쳤던 신인배우 장자연을 죽인 것은 권력자 개개인을 넘어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정의롭지 못한 대한민국 사회가 죽인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국가에 대한 나의 삶이 불안과 의심으로 가득 차게 되더라. 앞으로 삶에 닥칠 문제들에대해 무엇을 어떻게 신뢰해야할지 부터가 막막해진다.

9년이 지난 현재 국민들의 청원과 목소리에 힘입어 이번 달(11월) 5일부터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된다.

어떻게 보면, 국민들이 국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 같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친일파 청산의 실패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만큼 상대가 누구든 적폐와 잘못은 바로잡고 넘어가야 한다. 그것이 국가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고 후대를 위한 역사적 유산이다.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로 한발 짝 나가기 위해서 장자연 사건 재수사는 다른 측면에서 조금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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