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전성시대 2 – 8월의 크리스마스

한국영화 전성시대 그 두 번째 편을 지금 시작하고자 한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로 공인하고 있는 1919년 신극좌의 <의리적 구투>를 시작으로 한국영화 역사도 100년을 앞두고 있다. 필자는 100년 가까이의 한국 영화 역사 중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를 한국 영화의 전성시대로 꼽는다고 앞서 언급한 바 있다. 한국영화가 질적, 양적으로 비약적이게 발전한 시기, 대규모 상영관과 배급 시스템을 갖춘 시기,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각각의 색깔과 개성이 뚜렷한 영화들의 등장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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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전성시대, 그 두 번째 영화는 허진호 감독,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다. 혹여나 또 한석규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까 싶지만, 90년대 영화에서 한석규는 빼놓을 수가 없다. 97년도에만 무려 3개의 작품에 출연했고, 90년대 후반, 40개의 시나리오가 몰려 영화를 골라 찍는다는 얘기를 할 만큼 당시 한국영화 연기의 정점에 서있었던 배우이니까.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가져온 이유는 개봉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멜로 영화의 교과서로 꼽히기 때문이다.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 영화만한 멜로영화는 더 이상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라는 평도 있을 정도. 이 영화는 기존의 일반적인 한국의 멜로 영화와는 다르다. 한국 멜로 영화 아무거나 하나 떠올려보자.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죽음에 대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살고 싶어 서로를 끌어안고 울고, 발버둥치고, 애처로움을 자아내는 장면들. 다들 어렵지 않게 떠올랐으리라 생각된다. 멜로 영화의 이런 감정적 과잉은 보는 이를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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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도 신파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의 소재 자체는 신파적이기 그지없다. 시한부 판정, 죽음을 앞두고 다가오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 사랑. 여느 멜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설정과 소재. 그러나 이 영화가 다른 점은 자질구레하고 질척한 감정의 과잉이 없다. 우리 일상 속에 있을 법한 인물들로 별 특별함 없는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맑고,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덤덤하게 그려낸다. 그럼에도 그 어떤 감정의 과잉보다 더 슬프게 다가온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중 정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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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멜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눈물을 쥐어짜내기 위한 영화의 장치들에 넘어가 눈물을 흘리는, 슬픈 그 감정을 느끼는 그 기분이 별로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다르게 다가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결코 슬픔을 위한 영화가 아니었다. 슬픔을 위해 사랑하고 슬픔을 위해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해 발버둥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얗게 눈 내린 초원 사진관 앞을 서성이는 다림(심은하)의 모습에 덮여지는 정원의 독백. 그리고 천천히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까지 멍하니 바라보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도 멍하니 검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과 일상 그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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