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예진

 

안녕.

 

오랜만이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건. 2년 전 처음으로 썼던 편지는 서로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가 됐었지. 그때는 손으로 사각사각 글을 썼었는데 지금은 ‘너’라는 이름을 빌려 겨우내 자판을 두드리는 게 전부구나. 찌질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어.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이름도 붙이기 힘들 정도로 낡아 버렸거든. 물론 합리화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거 알아? 그 때 나는 너에게 보낼 답장을 미리 연습장에 적어보고 나서야 편지지에 글로 옮길 수 있었다. 무던해 보이고 싶었거든.

 

잘 지내지? 얼마 전 네가 사는 곳에 갔어. 일면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나는 뜬금없게도 네가 떠올랐어. 친구들과 가족들과 어쩌면 너의 전, 여자친구와 다녔을 지도 모를 길을 나는 혼자 따라 걸었다. 너랑 그렇게 같이, 많은 인파 속에서 평범하게 같이 걸어보는 게 하나의 바람이었는데. 그나저나, 여자친구는 생겼니. 그렇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어. 그냥 너가 좋으면 된 거지. 너는 너와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해. 나는 그저 내가 너에게 오점으로 남지만 않으면 좋겠다.

 

시간에는 참 예외가 없지. 그리고 다행인 건, 그 예외 없는 시간 속에서 나도 다른 사람들과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거야. 처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래다 못해 색이 바란 날들을 되감기하는 것뿐이었는데, 달력을 한 장씩 넘길수록 뭔가 쨍-한 게 와닿더라. 우연 같은 거, 믿고 싶었는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거, 이젠 다 알잖아. 그런 시간이 익숙해지는 동시에 조금씩 흐려지더라. 다만 아쉬운 건 서로에게 끝까지 더 솔직하지 못했다는 거야. 우리의 짧은 시간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해, 관심도 없을 테고. 으레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이야기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건,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잖아. 그치만, 나는 아직도 네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목소리를,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곳을 보게 했던 그 하늘의 보름달을, 기억해.

 

뭐가 문젤까. 사실은 그냥 보고싶다, 그 한마디면 될걸. 용기 없는 나는 이렇게 전하지도 못할 글 하나에 겨우 꾹꾹 담아낸다. 아마 꽤나 오래 참아왔던 이야기일지도 몰라.

 

▲ ⓒ 나예진

 

-

 

“희연아.”

 

“어,”

 

“아니, 희연아.”

 

“아니, 왜.”

 

“이거 뭔데.”

 

“어?”

 

“이거 뭐냐고.”

 

아뿔싸.

아차, 싶었다.

 

“아, 이거. 이게 뭐지? 언제 썼던 거지? 과제..였었나. ”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니까, 노트북이 고장 났다던 대현이에게 내 걸 빌려준 게 잘못이었다. 과제에 열중한 대현이가 예뻐서 한동안 바라보다가 그의 옆에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던 찰나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의 대현이는 이래저래 열심히 자료를 찾고 있었는데, 저 폴더는 언제 살펴본 걸까. 예전의 나는 생각을 글로 정리해두던 버릇이 있었다. 저것도 아마, 한창 괴로웠을 때 썼던 글일 거다. 꽤나 깊숙이 잠겨있던 글일 텐데 어떻게 찾았지. 저 파일에 비밀번호라도 걸어놨어야 했나. 대현이한테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이렇게나 애틋한 사랑을 했어? 글을 살피던 나도 생각했다.

 

“이거 누군데. 난 아닐 거고.”

 

뾰족한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사과를 해야 하나, 이 글을 삭제부터 해야 하나. 얼버무려야 하나. 아, 이건 아니겠지.  

 

“아, 미안해. 이거 진-짜 옛날에 쓴 거였는데, 지금은 있는지도 까먹고 있었어..”

 

‘됐어,’ 기분이 상해 보였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 대현이는 과제는 여차하고, 노트북을 종료하려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것, 그리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하는 것. 내겐 참 부족한 지혜다. 그래서 우리의 끝이 더 빨랐던 지도. 뭐라 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너는 해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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