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당신, 청춘인가요?

출처 - 조선일보

 

내가 닮고 싶은 전문 커뮤니케이터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첫 발을 내딛기 전에 커뮤니케이터의 정의를 먼저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질문이 더욱 수면 위로 얼굴을 드러나고 그의 앞에서 더욱 솔직해질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사람, 전달자”이다. 그렇다면 전문 커뮤니케이터란 전문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전달자이자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으로서 의사를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전문 커뮤니케이터는 교수, 장관, 언론인을 비롯해 12개의 직업을 가진 남자. 바로 이어령 선생이다. 이어령 선생은 유복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시골의 그저 그런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이어령 선생에게는 남들이 말하는 경제적 자본의 양적 수준으로 표상되는 수준만이 평범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지적 호기심이 왕성했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그 시대에 새로 발명된 기계가 세상에 나올 때면 어김없이 그 물건을 이용한 사업을 하시는 분이었다. 계란 부화기가 나왔을 때는 양계장, 발동기가 계발되었을 때는 정미소를 차리는 식이었다. 아버지는 신문물이 나왔을 때마다 사업 아이템을 바꿨기 때문에 이전에 사용된 폐물들은 이어령 선생의 몫이 되었고 그 ‘장난감’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어머님은 대단히 감성적이셨으며 다독가이자 사색가였다. 집안의 형제들도 모두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어서 어릴 때부터 문화적 자산을 많이 접하며 살았다. 그래서일까, 이어령 선생은 평생의 업을 글쓰기로 자연스럽게 삼게 되었고, 대학 진학도 그에 따라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어령 선생은 졸업 무렵 당시에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학보 학예부장을 하고 있었는데, 학보에 <이상론>을 기고했다. 사람들의 이상의 작품을 난해하고 미친 사람이 쓴 글로 취급할 때 이어령 선생은 이상의 작품을 하나하나 분석해서 해석을 시도했다. 그의 해석은 어느 출판기념회에서 우연히 발표되었고, 그때 기성 문단을 혹독하게 매도했었다. 그 해석의 요지를 요약해서 나온 작품이 바로 <우상의 파괴>이었고, 한국일보 문화면에 게재되어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다. 젊은이가 가진 패기와 그가 가진 가치관은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여 세상에 물음표를 던졌다.

 

출처 - 조선일보

 

그는 치열하게 젊음을 살았고 젊음을 잘 살았기에 늙는 줄도 아는 사람이다. 인간이 가진 창조성의 위대함을 믿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았으며 청춘은 나이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무색하게 에버노트와 같은 메모 프로그램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녹여내었고, 애플의 맥북(Mac book)과 같은 최신형 전자기기들에 둘러싸여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생각과 인생을 녹여내는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몸에 폐암이라는 시한폭탄을 지고도 낙담하지 않고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인생사에서 배울 점은 너무도 많아 보인다. 인간의 창작성과 생산성을 믿고 디지로그(Digilog)와 같은 사색이 낳은 창작의 별로 세상을 바꿀 수도, 젊은 별들의 인생길을 밝혀줄 수도 있다는 것을 글로 증명해내었다. 끝없는 물음표를 던지고, 인습적인 것들에게 얼어붙은 호수를 깨부수는 도끼가 되어준 그의 빛나는 창작은 지칠 줄 모르고 나아가고 있다.

그의 인생사를 살펴보고는 그의 삶에서 배울 점이 크게 3가지가 있다.

1.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물음표를 던지는 것.

그는 이상이라는 작가의 유산을 폄훼하고 평가 절하하는 그 당시 문단의 해석을 대학교 4학년 때 <우상의 파괴>라는 글을 이상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하나 분석해서 기존과는 다른 자신만의 해석을 발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끄덕이게 만들었으며, 인습적인 그 당시 문단의 원로들의 아이코노클라스트(Iconoclast, 우상 파괴자, 인습 타파주의자)가 되어 학생들에게, 시민들에게, 그리고 이 땅에 존재할 그 누군가에게 물음표를 던졌다.

 

2.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것.

사실 위의 사항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지만 그는 과학문명 앞에 서서 러다이트 운동을 하고자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산업혁명이 가져다주는 편리함과 생산성 혁명의 산물을 받아들이고, 글을 쓰는 자신의 생활양식을 오히려 그에 맞춰서 생산성을 극대화시켰다.

 

3. 죽음이라는 절벽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

암 투병 중인 와중에도 방송활동과 집필활동 그리고 종교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의 자세는 몽테뉴의 말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하다. 젊음을 뜨겁게 살았기에 늙음을 알고 늙음을 뜨겁게 살았기에 죽음을 아는 죽음의 절벽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정진해나가는 그의 끝없는 뜨거운 청춘은 본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어령’이라는 사람은 글로, 말로써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는 전문 커뮤니케이터로서 또는 인간 ‘이어령’ 그 자체만으로도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하며 이어령이라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청춘, 열정,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력은 전문 커뮤니케이터로서 갖춰야할 덕목이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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