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포토콘텐츠

ⓒ곽미소

 

그런 말이 있지. 살랑살랑 꽃 비 내리는 봄에 만나 따가운 햇볕 머금은 여름에 뜨겁게 사랑을 하고, 코트를 여미는 가을에 시들시들해져 간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 뒤는 코끝이 시린 겨울에 하는 이별이라고 다들 그러더라.
그 말을 믿지 않았어. 우리는 봄에 만난 것도 아니고 한겨울 그것도 가장 춥다던 겨울에 만나서 몇 번의 사계를 보냈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요즘 들어 네가 좀 어색하더라.
데이트도 몇 번 거절하고 회사 일 바쁘다고 자주 연락도 안 하고 내가 너희 집에 가려고만 하면 피곤하다면서 집에서 쉴 거니까 오지 말라고 말을 했지. 무턱대고 찾아갈까 생각해봤는데 그럼 싸우게 될까 봐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어. 너를 믿었으니까.
아, 많이 피곤한가 보다. 그래 요즘 회사에서 매번 야근이라는데 내가 참아야지. 기다려야지. 하고 생각하던 날들도 이젠 손에 꼽지 못할 정도가 되었어.
서운하냐고? 아니 서운한 건 아니야. 그럴 수 있지. 몇 번의 계절을 지나 나는 네게 점점 물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너는 아닐 수도 있는 거니까.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고 나한테 네가 다 맞춰줘야 할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야. 서로가 굽힐 수 있는 부분은 굽히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지.
이 가을을 버티고 나면 우리는 다시 따뜻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근데, 그것마저 내 착각으로 만들어버리면 어떻게 하니.

싸울 걸 각오하고 무턱대고 찾아갔던 너희 집, 그리고 현관에서부터 보이는 낯선 신발. 사람이 멍해지더라. 분명 키패드 누르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 집안은 고요한 정적만 흘렀어. 그 정적을 깰 생각도 못 했지. 나는 그냥 발길을 돌려 집을 나왔어. 최대한 조심히 현관문을 닫았지. 소리라도 지를걸, 화라도 낼 걸 울기라도 할걸. 근데 그런 생각마저 다 비참해 보이더라고. 최대한 내 자존심 세우는 길은 조용히 나오는 것.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어.
코트 자락을 여미면서 길을 걸어가는데 신기하게 눈물 한 방울도 안 나오더라. 어느 순간부터 알았나 봐.

우리가 그만했어야 할 때를 말이야. 내가 미련하게 붙잡고 있어서, 나만 놓으면 됐던 계절을 끙끙거리며 붙잡고 있어서. 시들해진 가을을 눈치채지 못한 내가 미련하게 겨울을 기다리고 있어서 그랬나 봐.

 

나도 이제 놓을게. 미련하게 붙잡고 있던 가을 보내고 새로운 봄을 기다려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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