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예진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19와 20, 미성년과 성인의 간극이 얼마나 큰 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제재 당했던 것들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지고, 처음으로 집을 떠나 생활하고,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도 각기 다른 곳으로 떠나고, 그래서 익숙한 사람들이 괜히 더 소중해지고, 전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학교에서 만나고, 선택한 전공의 수업을 듣고…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학교에 들어오고 한동안은 오히려 그 어색함이 기대로 다가오던 날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대학교에 오면서 가장 몸으로 와닿던 변화는 생활환경도, 사람도 아닌 ‘수업’에 관한 것이었다. 많이 널널해진 시간표를 보며 하늘이 까맣게 변해야만 겨우 집에 왔던 고등학생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맞나 싶었고, 여태 해왔던 것들과 달리 ‘배우는 사람’의 몫이 절대적으로 커진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달았다. (지금은 까마득한) 1학년 1학기부터 나는 하나의 종이신문을 만들기 위해 동기들과 ‘조모임’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았고, 책을 미리 읽어서 토론할 거리들을 준비해야 했으며,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스크린으로 화면을 띄워놓고 발표를 해보았다. 사실 안타깝게도 수업을 참여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 1학년의 나는 대학(大學)에 집중하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점은 고등학생 때 배우던 절대적인 틀에 박힌 수업들보다는 훨씬 재미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선배, 동기들과 처음으로 시작했던 스터디는 생산적인 시간이 주는 밝은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됐고, 이는 하고자 하는 바는 있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내게 선배와 동기들이 건네준 응원과도 같았다.

아, 물론 당시 내 글은 지금 보면 낯 뜨거워질 정도로 순 엉터리이지만, 나는 또 다시 곱씹어본다. 결국 오늘도 과거가 될 것이며, 어제가 없는 내일은 없다는 것을.

 

특히나 ‘커뮤니케이션’을 중점으로 두고 배우는 까닭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줄줄이 늘어지는 말꼬리처럼 ‘신방(구 신방, 현 미컴)’하면 늘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것이 조모임이었다. 내게 조모임이란 소중한 공강이 우습게 매일 학교를 가게 만드는 미운 것이었지만, 협동이 중시되는 대학생활에서는 불가피한 존재였다. 대부분의 조모임이 그리 유쾌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었지만 나는 순종적이었고, 사실 순종적이기만 해서 조원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잘 따라가지 못했던 탓도 있고,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내 의견을 내는 것은 그 분위기만큼이나 무거웠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일이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듯 조원이나 교수님이 해주는 따뜻한 말에 힘을 냈던 적도 있었고, 학년이 올라가며 했던 다양한 과제는 뜻하지 않게 재미있는 경험으로 기억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속으로 삼켰던 그 때의 말들은 여전히 후회로 남아있다.

이처럼 피할 수 있다면 되도록 피하고 싶던 조모임도,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고치도록 깨닫게 해주는 이 과정도 결국은 커뮤니케이션의 일부였던 것이다.

▲ ⓒ 나예진

유명인들은 하나같이 ‘소통’을 강조한다. 이것뿐이랴, 소통의 중요성, 소통의 리더십, 소통 전문가, 소통 치유처럼 그럴싸한 단어 옆에는 늘 소통이 붙는다. 포털사이트에 책 검색을 해봐도 제목에 ‘소통의 기술’이 들어가는 책만 대 열여섯 권이 나온다. 소통능력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 되어버린 지금은, 정말 소통의 시대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학문을 배우고 있는 내게 질문을 던져본다. 커뮤니케이션을 배워왔던 3년하고 반의 시간은, 어땠는가.

 

사실 제목에는 ‘예찬’이라고 붙여놨지만, 실은 ‘애증’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복잡한 것 같아서 보기 싫고, 공부할 땐 볼 게 많아서 하기 싫고, 더 이상 미뤄놓을 곳이 없을 때 겨우 찾아보게 되다가도, 재미를 느끼거나 삶에 적용되는 부분이 있을 때는 무엇보다도 반가운 심정이랄까. 집안을 온통 어지르고 맛있는 것들을 다 뺏어먹는 조카가 밉다가도, 또 막상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배부르고 괜히 뿌듯한 그런 거. 매 시험기간 빼곡히 쌓이는 프린트가 버겁기도 했지만 공부가 간혹 재밌거나, 잘 되거나, 열심히 했던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면 온종일 들뜰 정도로 또 다른 기쁨이나 성취감을 얻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나 어느새 마지막 학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나는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비슷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무지와 짧은 생각으로 침묵했던 경험도 있고, ‘미디어커뮤니케이션’으로 흘러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를 고민하면 여전히 깊이 아래로 내려가는 기분이니까.

하지만 ‘신문방송’, 그리고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그 이상의 것을 느끼고, 얻고, 깨달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배움을 스스로에게 접목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를 하고 기사를 써봤던 기억은 사회에 나가서도 잊지 못할 것이다. 또 가끔은 경계를 넘어 타과의 강의를 들으며 다른 시선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도 노력했고, 이러한 배움은 대인관계에서도 작용해 내적으로 더 단단해지는 법을 알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안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고등학생 때부터 비슷한 꿈을 가져온 내가, 또 다른 전공을 배워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커뮤니케이션 말고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물론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더라도 서로 간의 소통에 있어서 완벽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고, 실제로 나는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것을 지난 날동안 알 수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는 미숙함으로 인한 열등감을 발견했고, 역으로 이러한 열등감은 나를 한 뼘 더 성숙하게 해주는 촉매제와 같았던 것이라고 늘 생각한다.

 

사실은 알게 모르게 커뮤니케이션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이 시간들이, 그리고 앞으로 자동문을 드나들 기간들이 지금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한때는 미워하기도 하고 회의를 가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에게 떼놓을 수 없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이러한 애증의 존재가 나를 궁극적인 곳까지 감싸주면 좋겠다. 그렇게 희망하다 보면 각자의 마음속에 고래 한 마리씩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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