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녀를 미치게 했는가?>

▲ ⓒ김나윤

조남주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두 가지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인용하고, 이에 대한 내 나름의 가치관과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글을 정리해보려 한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에서, 무엇이 김지영 씨의 상태를 지금에 이르게 했는지 즉, 무엇이 그녀를 미치게 했는지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나는 이 책의 내용과 연관 지을 수 있는 두 가지의 이론을 먼저 정리해보았다.
우선 젠더렉 스타일은, 남성’성’과 여성’성’에서의 ‘젠더(Gender)’인데, 이 이론에서는 여성의 말하기와 남성의 말하기가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남성의 경우 지위와 존재를 드러내고 강조하는 ‘보고적 대화’를 하고, 여성은 연결과 공감을 강조하는 ‘공감하는 대화’를 한다. 남성들이 군대에서 경어체를 사용하고, 여성들이 수다 떨기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을 쉽게 사례로 제시할 수 있다.

침묵 된 집단 이론은, 언어가 남성이 구조화시킨 산물이라는 가정하에, 언어는 남성에게 유리하고 여성에게 불리하게 되어있다고 말하는 이론이다. 여기서 여성은 ‘침묵 된 집단’이 된다. 남성은 여성의 경험을 명명하는 권력자이자 커뮤니케이션의 수문장이며, 여성의 진실은 남성의 담화 속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민속학자들의 연구가 대체로 남성을 대상으로 하고, 남성의 경험을 통해 인간의 경험이 일반화되고 있고, 여성과 어린이 등의 이야기는 침묵 되어 인간 역사에서 배제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이론이다.

나는 이 두 가지의 이론이 <82년생 김지영>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나 역시 수많은 김지영 씨 중 한 명이었고,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도 졸업까지 한 학기가 남은 지금까지도 수없이 많은 일을 듣고, 목격하고, 직접 겪었다.

▲ ⓒYES24

2년 전, 내가 2학년일 때 겪었던 일이다.
한 달에 2개 이상씩 대외활동을 하면서, 연말이 되어갈 때 즈음 나는 모 대외활동에 면접관 자격으로 앉아 있었다. 21살이었던 나는 4명의 면접관중 막내였고, 처음 맡은 ‘중요한 임무’에 무척 긴장되고 설렜다. 그런데 그 설렘이 오래가진 못했다. 면접이 모두 끝나고, 합격자에 대해 회의하던 중 우리 중 가장 높은 직책에 있던 분이 ‘같은 점수면 남자로 뽑자’고 제안하셨고,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멈칫’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왜 그렇죠?” 라고 질문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 모인 4명의 면접관중 여자는 내가 유일했고, 그들의 시각에서 나는 가장 어리고 경험이 없었다. 그 날 그 자리에서는 그 결정이 ‘당연하다는 듯’ 채택되었다.
나는 왜 남자를 뽑아야 하는지 의아했지만, 이유는 들을 수 없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 일이 양성평등에 어긋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도 여자인데, 어쩌면 내가 당했을지도 모를 그 부당함을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소름이 끼쳤다.
물론 이 일은 2년 전이다. 그런데, 최근에 겪은 일은 아직도 손끝이 떨릴 만큼 화가 나고, 두렵다.

올해들어 여러 일들이 겹치면서, 날을 새고 오전 6시에 택시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던 적이 있다. 10분 거리의 장소에서 집까지 걸어가던 중, 나는 이상한 사람과 길에서 마주쳤다. 그는 한눈에 봐도 눈이 풀려 있었고, 나는 당연히 그 사람을 피해 걸어갔는데, 그는 내 앞길을 가로막더니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 그 한마디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여기서 주춤하면 안된다, 절대 당황하면 안된다며 수 없이 되뇌며 약속이 있다며 함께 택시를 탔던 오빠에게 연락을 취했다. 남자는 ‘이 이른 시간에요?’하며 웃으며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10분거리의 집까지 가는 길에 남자는 계속해서 나를 쫓았다. 사람이 없는 골목이라 더 두려웠고, 엘리베이터에 타서 여러 층을 누른 후에, 집에 들어서자 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분했고, 서러웠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겪은 그 날의 부당함이 너무나 화가 났다. 아무런 대체를 하지 못했던 스스로가 안타까웠고, 여전히 그 골목은 지나치지 못한다.

이 책은 ‘페미니즘’ 소설이다. 이 책이 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되었을 때 처음 이 책을 접했다. 당연히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찾아보며 공부했다.
앞뒤가 맞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남녀평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이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서로의 언어를 보다 깊게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저 ‘다르다’고 정리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연구 결과들이 나와 있는데, 이를 모른 채 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두 가지 사례는 그저 내가 겪었던 일부에 불과하다. 영화공부를 하게 되고, 직접 영화촬영 현장에 가보고, 영화제 스태프로 일해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겪고, 들었던 수 많은 나와 지인들의 경험은 여전히 너무나 충격적이다. 충분히 누군가를 ‘미치게’할 수 있었고, 언제든 내가 혹은 A언니가, B동생이 ‘김지영’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 김지영씨가 ‘미친 사람’이 되었는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들을 읽어 나가면서 가슴이 아프고 먹먹했다. 물론 소설에서는 페미니즘의 극단적인 모습을 녹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아님을 직접 겪어봤기에 알고 있다.
당신의 툭 던진 말 한마디, 조심성 없었던 한 번의 행동이 모여서 나를, 우리를, 김지영씨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참고자료* :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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