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커뮤니케이션 북스

커뮤니케이션학도들을 위해 총 7명의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들이 저술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당신을 위하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총 다섯 개의 장이 있는데 그중 여기서 다뤄볼 장은 제 1장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사람의 사명’이다. 이 장은 필자가 읽었던 플라톤의 ‘고르기아스’ 와 부르디외의 ‘말하기의 의미’라는 두 권의 책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완전히 반대되는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해본다.

우선 첫 번째 ‘고르기아스’라는 책은 아테네의 고르기아스, 폴로스, 카이레폰, 칼리클레스가 모여 담론을 펼치는데 칼리클레스가 자꾸만 대화의 틀을 벗어나며 독단적인 자신의 의견만을 개진해서 소크라테스가 논박하기도 하고 논박 받기도 하는 대화를 하라며 권유한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최고의 선이라고 믿으며 전제군주의 권력을 동경하던 칼리클레스였지만 소크라테스의 권유에 마침내 보편적인 이성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을 통해 샤틀레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안팎으로 크고 작은 분쟁들이 발생하던 시기에 폭력 대신 말을 혹은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말을 선택한 그리스인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 일 거라 역사적인 맥락에서 짐작해보았다. 그래서 결국 이 ‘고르기아스’에서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다음은 사회학자인 부르디외가 저술한 책인 ‘말하기의 의미’에서 부르디외는 사회학적 관점으로 언어활동을 정의 내렸는데, 부르디외는 동질적인 언어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이 공동체의 공유재산인 언어의 이용 능력을 동등하게 갖춘 화자 청자 간 대화란 거의 존재하지 않다고 보아 행위자들을 끊임없는 미시적 권력투쟁 속으로 몰아넣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러한 실질적 제약들 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그저 신체적이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폭력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커뮤니케이션도 일종의 폭력이라니 커뮤니케이션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폭력을 거부한다는 플라톤과는 완전히 상반된 주장이다.

▲ 출처- 지식백과

이 장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었던 ‘자신의 시각과 의견을 언어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펼칠 미래의 언론인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이 폭력이라는 명제는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상적으로 쓰이는 언어가 언제나 조심스레 다뤄져야만 하는 흉기라는 사실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그 흉기는 물리적 폭력과 달리 보이지 않게 사람을 해치고 체제가 가하는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한다.’라는 저자의 말을 밑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상시 일상적으로 쓰이는 언어라도 자칫 잘 못 했다가는 흉기가 되어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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