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포토콘텐츠

 

▲ ⓒ이효린

 

꽃은 딱 질색이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그래서 봄을 싫어했다.

 

싫다, 싫다 입 밖으로 말하니 정말로 알레르기가 생겼다. 꽃가루 알레르기도 아니고 꽃만 보면 온 몸에 빨갛게 두드러기가 올랐다. 꽃을 싫어하는 내게 정당성이 생긴 것 같았다. 사람들은 꽃을 좋아했고 꽃을 싫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핑계가 생긴 나는 더 극심하게 꽃을 피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일하는 곳에 처음 보는 손님이 왔다. 환하게 웃으며 주문을 하는데 이상하게 같이 미소 짓게 되었다. 그 손님은 이틀 간격으로 항상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날이 제법 쌀쌀해져도 코를 킁, 하며 아이스를 고집했다. 날씨도 추운데 감기 걸리겠어요. 말을 걸고 싶었지만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해본 게 손에 꼽는 성격 탓에 묵묵히 얼음을 넣어드렸다. 그럼 매번 그 손님은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고선 가게를 빠져나갔다.

 

뭔가 방도가 필요하다. 오늘은 기필코 그 사람에게 말을 걸리라, 다짐한 나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냥 관심있는데 번호 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돼?”

“아니면 무드 있게 딱 꽃 한 송이 주고.”

“야 얘 꽃 싫어하잖아.”

 

또 꽃이다. 그리 넓지도 않은 인맥이건만 10명 중에 7명은 꽃을 주라고 했다. 말 없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나. 하지만 나는 이제 꽃만 봐도 온 몸에 빨갛게 두드러기가 오르는데 꽃을 어떻게 전달하지? 꽃이 싫은 건 둘째치고 꽃을 손에 쥐고 그 사람에게 건네줬을 때 벌겋게 달아오른데다 오돌토돌한 두드러기가 오른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 조차도 그 모습이 싫은데 남은 얼마나 보기 싫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꽃을 주겠다는 마음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아 근데 저기 창가에 있는 꽃도 다 직접 관리하는 거세요?”

“네? 아 그건 사장님이…”

“아~ 꽃이 예뻐서요.”

 

환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큰일났다. 저 사람은 꽃을 좋아하는 구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핸드폰으로 근처 꽃집을 검색했다. 일하는 카페 바로 오른쪽에 꽃집이 있었다. 관심이 없으니 꽃집이 있는지도 몰랐다. 교대자가 오자마자 꽃집으로 갔다. 손등이 가려워 오는 걸 느꼈다. 벌써 두드러기가 오르고 있었다. 손을 들어 목 부근을 쓸었다. 목도 점점 오돌토돌한 게 올라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지… 살면서 왜 그렇게 꽃을 싫어했는지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적당히만 싫어했다면 알레르기까지는 안 생겼을 텐데. 좌절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어.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 아니세요?”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 사람이었다. 내가 반갑기라도 한 건지 또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 웃음. 저 웃음 하나 때문에 내가 지금 이러고 있다니 믿기지 않으면서도 또 한 번 수긍했다. 꽃 좋아하시나봐요. 악의 없이 묻는 그 목소리에 아니요, 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어색하게 웃자 나를 따라 또 한 번 씩 웃어주는 얼굴을 보며 손에 힘을 줬다.

 

“저… 저기 있는 꽃 한 송이만 주세요.”

“어떤 꽃이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점점 빨개지는 얼굴을 감추려 아는 꽃 이름을 아무거나 불렀다. 코스모스요.

 

“에구 어쩌나. 코스모스는 이런 꽃집에서는 안 팔아요.”

 

망했다. 꽃 알레르기와 함께 부끄러움에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뒤에 있는 그 사람은 내 실수가 웃긴 건지 잇새로 웃음이 흘렸다.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는 말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코스모스 예쁜 데 있는데 가볼래요?”

 

뜻밖의 제안이었다. 어떻게 이 위기를 피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줬다. 가면 또 얼굴이 새빨개지고 두드러기가 오를지 모르지만 지금이 아니면 못 갈 것 같았다. 이 이후엔 내가 더 이상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슨 패기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의 뒤를 따라 10분 정도 걷다보니 공원이 나왔다. 공원은 가을이라 그런지 단풍이 물들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코스모스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또 알레르기가 오르고 있었다. 최대한 감추려 셔츠를 손까지 쭉 내렸다. 빳빳한 재질이라 그런지 원하는 만큼 내려오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맨투맨을 입고 오는 건데.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옷과 씨름하는 동안 그 사람은 코스모스를 보고 있었다. 벌써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예쁘죠?”

 

지는 노을이 빨갛게 타올랐다. 그 빛을 등지고 나를 돌아본 사람은 까맣게 그림자가 져 얼굴이 보이지가 않았다. 다만 환하게 올라간 입꼬리만이 보였다. 아 이걸 보여주러 온 건가.

 

그 순간 나도 노을의 일부가 되어 빨갛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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