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처벌-미셀 푸코

 

현재 우리는 아주 많고 다양한 규율과 규칙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고 있다. 한 아이가 태어나서 그 아이는 의식주를 학습하고 언어를 학습하고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며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는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면서 자란다. 이러한 학습 과정에 사회가 규정한 기준에서 벗어나거나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잘못하였다고 분류되어 처벌을 받는다. 여기서 아이의 범칙행위 결과는 벌점으로 매겨지고 범칙 행위의 정도에 따라 처벌까지 이르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태어나 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이 범법(법칙) 행위를 하거나, 타인의 범법(범칙) 행위를 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과거 학교를 기준으로 학생이 기준을 벗어난 행동을 하였을 때 체벌 방법을 통해 학생을 교육하고자 했다. 교사는 학생에게 엎드려 뻗치게 하여 엉덩이를 때리거나, 발바닥을 때리거나, 손바닥을 때리거나, 서울구경이라는 이름의 구레나룻을 잡아 올리는 등 다양한 체벌 방법을 실제로 행하여 왔다. 하지만 이러한 처벌은 근래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사회가 시간에 따라 변하고 그에 맞춰 체벌에 대한 학생의 인권, 체벌로 인한 다양한 문제점이 대두되면서 학생 체벌에 관한 법이 만들어졌다. 법을 벗어난 체벌이 불법이 되었고 근래 도구를 사용하거나 교사의 직접적 체벌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상벌점 제도를 도입하고, 봉사활동, 많은 양의 반성문, 교육을 통한 처벌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우리는 과거의 체벌은 비도덕적이고 잔인하다고 인식하고 현재 상벌점제와 봉사, 반성과 다짐에 대한 처벌은 도덕적이고 교양적이다 라고 생각한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이렇듯 처벌 방식은 신체형에서 정신형으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인물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작은 사회(학교)도 이러한 변화를 보인다. 과거와 현재 우리 사회는 이미 신체형에서 정신형으로 처벌 방식이 변화되어 왔다. 앞서 학교 처벌 변화 방식에 대해 우리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된 것이라 대다수가 인정하지만 미셸 푸코는 다른 의견을 주장한다. 처벌의 방식이 진보되었으나 우리는 근대의 어두운 이면에 주목해야한다는 것이다. 미셸 푸코의 이러한 주장은 우리가 사회를 성찰 해 볼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봉건군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봉건주의시대 사회는 생산력이 부족했기에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처벌은 신체에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처벌은 때로 지배자의 권력 과시와 강화 목적으로 이용된다. 공개처벌 방식으로 처벌의 잔인함과 인간의 고통스런 모습을 대중에게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함으로써 두려움 증폭을 통한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과거 환경과 많은 대중을 다스리기에 이러한 공개처형과 신체형을 통한 방식은 권력에 반하는 자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줌으로써 대중을 제어하는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당시 대중들은 이러한 신체형의 과정, 범법자의 고통이 잔인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으나 신체형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지배자의 힘을 체감하고 자신이 간접적으로 경험한 처형의 당사자가 되지 않기를 생각한다. 이처럼 신체형이 당연한 것으로 알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형은 잔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인식하고 자본주의 이후 처벌 방식이 정신형으로 변화하게 된다. 정신형의 예로 감옥형이 있다. 정신 징벌을 통해 교정하고 강제 노동, 감시체계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처벌 방법이 변화되었는지 궁금할 필요가 있다.
18세기 후반 인간 개혁자들은 신체형의 폭력성과 왕의 권력 남용을 비판한다. 이런 계몽주의 영향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 발달, 부의 증가, 인구 급증에 있다. 이런 변화는 폭력, 절도 범죄 유형 증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폭력적이고 권력 남용 이유도 있겠지만 사회 전반적 발달로 인한 부의 증가는 사회 속에서 계층을 구성하게 된다. 증가하는 인구에서 소수는 많은 자본을 거느리고, 계층에 따라 거느리고 사용할 수 있는 자본은 층에 따라 차등적이었을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폭력, 절도 범죄가 증가하게 된다. 이런 많은 범죄를 모두 신체형으로 집행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봉건주의시대만큼 신체형이 가져오는 이점은 크게 작용하지 못하게 된다. 대중은 이미 신체형은 폭력적이고 왕의 권력남용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기에 실제 신체형을 집행한다면 그 지배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폭군과 남용을 하는 적절하지 못한 지배자로 인식되어 추방해야 할 대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때문에 지배자는 이런 인식을 피하고 효과적으로 범법자들을 통제할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권력은 대중을 좀 더 쉽고 처벌의 기준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시험이라는 규범화 가능하고 자격 부여와 분류, 처벌할 수 있는 감시체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시험을 통해 개개인을 감시하고 가시성의 대상으로 만들며 처벌 또한 개인의 공간을 부여해준다. 그 공간을 통제하고 개인의 정신을 교정하는 방법을 통해 대중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도록 정신형의 변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즉, 처벌의 변화 형식의 흐름 원인은 사회발전에 따른 대중의 수준 향상과 도덕성 중시가 아닌 결국 예나 지금이나 지배자의 권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말이다.

 

대중의 지식수준이 향상된 만큼 통제와 처벌의 수단도 일차원적인 아닌 고차원으로 향상될 필요가 있었고 과거 표면적이었던 수단은 오늘날 내면적으로 보이지 않게 대중을 통제하고 처벌해야하게 된다. 시험이라는 수단은 보이지 않게 대중을 통제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으로 규율과 권력, 규범화된 개인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와 병원, 군대는 시험을 통해 개인을 순응적인 신체로 만들어낸다. 규범을 통해 개인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며 이 과정에서는 지식과 학문이 이용되는 것이다. 이 말은 지배를 위한 수단인 시험에 지식과 학문이 이용된다는 말로, 의미는 모든 지식과 학문은 권력에 복종한다는 푸코의 말로 이어지게 된다.

 

지배자는 많은 대중을 지식과 학문에 기초하여 시험을 통해 구분하고 대중은 이를 통해 자신을 위치시키고 타인을 위치시킨다. 이 하나의 과정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데 효과적이고 지배자가 나서지 않아도 이들을 자연적으로 분류되며 대중 사이에서도 그들은 서로 분류하여 점점 개인화되는 것으로 권력은 이렇듯 대중을 보이지 않게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처벌의 변화와 그 배경, 의미를 지나 그렇다면 감시의 좋은 시스템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하였을 때 푸코는 벤담의 팝옵티콘을 제시한다. 팝옵티콘이란 감시자는 죄수를 볼 수 있으나 죄수는 감시자를 볼 수 없는 형식의 원형 감옥이다. 죄수는 감시자가 늘 자신을 감시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이러한 통제의 자기 내면화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앞선 말한 내용과 비슷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시험이라는 수단에서 권력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지만 우리는 실제 권력이 행사되고 있는지 체감하지 못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자신의 서열을 높일 수 있는 내적 방식인 규범을 통해 스스로를 정상으로 분류되도록 노력하고, 시험을 통해 검증되고 그것을 성취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에서 대중은 권력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개인화되고 통제하기에 지배자는 실제 대중을 주시하지 않아도 그들은 자기 자신을 알아서 통제한다는 말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지금 현재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은 권력을 주시하고 감시하는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앞선 시스템으로 보았을 때 대중은 권력을 느끼지 못하고 개인의 관점에서 개인을 분류하고 개인의 성취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개인을 죄수라 칭하였을 때, 팝옵티콘 형태에서 죄수는 감시자가 일을 똑바로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감시자가 누워 자는지, 아니면 우릴 보고 있는지, 라면을 먹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기에 이 형태는 감옥이라는 환경에서는 효율적이고 좋을지 몰라도 우리 사회, 정치라는 환경에서는 절대 좋은 형태가 아니다.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인 빅브라더가 사회를 잘 통제하고 있는지, 빅브라더가 놀고 있는지는 않은지, 시스템에 의존하여 자고 있지 않은지 절대 권력을 감시하는 자발적 감시인 스몰 시스터가 필수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젊은 사람들은 시험을 통해 보이지 않는 빅브라더에 적응되어 어떤 시대보다 규범에 의해 개인을 분류하고 위치시키는데 익숙해하며 개인의 공간을 구성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또한 시험이라는 수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시험에 맞추어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현재 시험은 개인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고 마찬가지로 개인 또한 큰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매커니즘에서 개인은 권력에 대한 관심이 없으며 자신의 비중은 굉장히 작다고 생각하여 소용없을 것이라 여긴다. 이 결과는 시험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한 지배자가 추구하고자 한 바람직한 결과임이 틀림없다. 

 

기술 발달로 인터넷과 휴대폰이 나타나고 이제 개인은 다수의 대중에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으며 그 효과 또한 굉장히 강하게 적용될 수 있는 환경이 생겨났다. 이러한 환경은 더 이상 개인은 작은 존재가 아니며 적극적인 스몰 시스터를 통해 우리는 효과적으로 빅브라더를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예로 지배자를 효과적으로 감시하여 우리가 지배자를 통제한 광화문 광장의 촛불시위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인터넷과 소셜, 휴대폰을 통해 개개인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활동을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개인을 끌어당기고 이러한 개개인의 합은 광화문이라는 장소에서 그 힘이 발휘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과거 환경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조건이었으나 현재 발전된 환경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권력을 감시 할 수 없는 환경이 아닌 개인도 권력을 효과적으로 감시 할 수 있기에 권력 또한 자신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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