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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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회식자리가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하루 종일 이상했던 이 사회에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왜 이러는 거냐는 질문조차 던지지 못했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지내는 가운데 나 혼자만 튀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나에게 있었던 일들, 남자 사원들이 겪었던 일들이 하루 종일 내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생각해보면 항상 여자들이 겪었을 일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방관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며칠 전 버스에서 어떤 여성이 누군가 자신을 만졌다며 소리를 지를 때에도 나는 무관심한 사람들 속에 섞여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나 혼자 나서봤자 영웅이 되기보다는 그저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만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자 상사들이 여직원들을 향한 시선과 미소, 손짓에도 나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마음이 편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상사의 눈에 찍히는 게 두려웠고,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내 앞길만 생각하기에도 벅찼다.

오늘 입장이 바뀌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고 있을 때 나는 앞에 있던 가로등에 머리를 크게 부딪치며 넘어졌다.

가로등 불빛이 눈에 아른거렸고,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 감아버렸다.

살며시 다시 눈을 뜨자 내 방 창문에서 흘러들어오는 햇빛이 나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내가 왜 방에 누워있지?”

 

머리를 만지자 아프기는 하였으나 그 어떤 상처도 없었다.

휴대폰 시간을 보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씻고 나와 옷장 앞에 섰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하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여자처럼 옷을 입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가 휴대폰으로 회사 단톡에 들어가 직원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원피스를 입고 활짝 웃고 있는 여직원의 사진을 보았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꿈이었구나.. 이렇게 생생한 꿈을 꾸다니.’

 

나는 평소처럼 정장을 입고 급하게 회사로 향했다.

회사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직원들의 분주한 모습, 커피를 타는 인턴 여직원,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과장님의 모습까지 그대로였다.

여자 인턴은 커피를 들고 과장님에게로 향했고 나도 모르게 시선이 여자 인턴과 과장님에게로 향했다.

 

“고마워, 항상 수고가 많아.”

 

미소를 지으며 여자 인턴을 바라보는 과장님의 손은 자연스럽게 여자 인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시선과 나에게 돌아올 피해가 두려웠다.

하지만 더 이상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애써 이건 저 둘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방관했던 나였지만 이제는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싶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과장님에게로 향했고, 여자 인턴의 손을 잡고 있던 과장님의 팔목을 잡았다.

과장님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시다 인상을 찌푸리셨다.

항상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알고 보니 겉에서 그저 맴도는 방관자에 불과했고, 오늘 드디어 사람들 속에 당당하게 들어왔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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