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문이 없어서 못나왔지?"

김슬기 감독

'숨바꼭질'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 나림이는 오랜만에 유치원에 갔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의 눈을 피해 숨었고, 유치원 선생님은 연습한 듯 로봇 같은 말투로 나림이를 위로했다. 나림이는 숨었다. 책상 밑, 창고, 커다란 바구니 등 유치원 곳곳에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숨었다. 여러 곳에 숨던 나림이는 한 구석진 곳에 우산과 상자로 벽을 만들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 출처 : Youtube

없어진 나림이를 찾아다니던 담임선생님이 그 벽 앞에 앉아 말했다. 선생님은 ‘이혼가정 자녀를 대하는 법’ 책을 꺼내 나림이에게 또박또박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읽어줬다.

“이혼은 너의 탓이 아니야.”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하셔.”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정이 있단다.”

나림이 마음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유치원 원장 선생님도 나림이를 구석진 곳에서 이끌어 내기 위해 얘기했다.

“엄마, 아빠랑 나림이랑 셋이서 이야기할래? 다 모셔올까?”

원장 선생님은 그 것이 나림이가 가장 원하는 말인 줄 알았다.

 끝내 엄마가 유치원을 찾았다. 엄마는 나림이의 벽 앞에 무릎을 꿇고 얘기했다.

“이나림. 엄마도 힘든데 너까지 왜이래..”

엄마는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아이에게 숨기지 못했다. 나림이에게 다 괜찮은 척 해왔던 엄마는 진심을 얘기했지만 어린 나림이에게 먹혀 들어갈 리가 없다.

▲ 출처 : Youtube

오랜만에 유치원에 온 나림이에게 눈길을 주는 딱 한사람이 있었다. ‘도우미’라고 적힌 아기자기한 목걸이를 걸고 있는 같은 반 빛나였다. 혼자 여기 저기 숨어 다니던 나림이에게 손길을 내밀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 얼결에 상처를 주었다.

“우리 엄마가 너 불쌍하다고 잘해주라 그랬어.”

그 후 나림이를 신경 쓰지 않고 빛나가 반에서 놀고 있는 사이 바빠 보이는 선생님께 빛나는 나림이가 왜 안오는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나림이가 마음이 많이 아파서 그렇다며, 빛나가 오늘의 도우미니까 반 친구들을 잘 지키고 있어달라고 했다. 나림이는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장난감 구급상자를 챙기고, 도우미 목걸이를 다른 친구에게 걸어주었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빛나는 나림이의 벽 앞에 도착했다. 아픈 나림이를 위해 약을 만들어주려 했지만 나림이는 아프지 않다고 했다. 빛나는 크레파스를 들어 나림이의 상자 벽에 문을 그려줬다.

“너 문이 없어서 못나왔지? 이제 나와. 나랑 놀자.”

“안 나갈래.”

“그럼 내가 들어가도 돼?”

“..응.”

▲ 출처 : Youtube

 이 영화는 21분의 러닝타임을 가진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고민을 했다. 마음의 벽을 단단하게 세운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우울증이라는 병이 다시금 세상에 떠오른 작년 12월부터 간간이 해왔던 고민이었다. 나라면 나림이의 벽 앞에 앉아 뭐라고 얘기할 수 있었을까.

 영화는 아이의 키에 맞춰진 낮은 곳에서 화면이 비춰진다. 그래서 서 있는 어른의 모습은 하반신까지 나오곤 한다. 하지만 나림이가 우산과 상자로 만든 벽 앞에서는 어른들이 모두 나림이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앉아서 이야기한다. 어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나림이를 구석에서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그 직업의식으로 이혼가정 자녀를 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읽고, 오랜 노하우로 아이가 원할 듯 한 방안을 내놓아 달래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나림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림이를 밖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진정한 걱정과 진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나림이에게 노크를 하고 그 벽 안에 함께 있어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가지 않겠다는 나림이의 말에 빛나는 오히려 자신이 들어가려고 한 것이다. 빛나가 그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나는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함께 있다면 그 우산과 상자가 벽이 아닌 둘만의 아지트가 되는 것이다. ‘도우미’라는 틀에 갇힌 목걸이를 벗고 불쌍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빛나는 나림이에게 다가섰다.

둘은 그 안에서 벽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며 논다. 이 영화의 연출의도를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엔딩 크레딧으로 이어질 때에 알게 되었다.

‘멋진 그림을 그리길.’

▲ 출처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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