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나리오

▲ ⓒ영화 '치즈인더트랩' 스틸샷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봄이 왔다. 지난 12월, 합격 소식을 듣고 설레하던 마음이 무색하게 겨울 방학은 너무나도 길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늘어질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봄이 왔고 기다렸던 나의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첫 대학 이라는 의미가 굉장히 컸다. 첫 캠퍼스, 첫 강의실, 첫 생활,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본다는 첫 CC. 아주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나 역시 마음이 괜히 붕떴다.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가, 꺼내보지도 않은 반질반질한 새 옷을 꺼내 입고 나서 한참 남은 강의 시간을 확인하곤 캠퍼스를 쭉 돌았다. 곳곳에 꽃이 만개한 게 어엿한 봄이다.

한참을 둘러보다 시계를 보니 강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깨닫고 부리나케 강의실로 달렸다. 이놈의 학교는 뭐가 이리 넓은지 이 건물인지, 저 건물인지 구별이 안 돼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으려던 찰나,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왔다.

 

“선주야!”

 

고개를 돌리니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입학식 때 봤던 아직은 좀 낯선 동기들이 잔뜩 서있었다. 어디 가냐는 말에 건물을 찾고 있었다며 멋쩍게 답한 뒤 그 무리에 꼈다.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한 명 한 명 인사를 했다.

 

“야 윤도훈 너도 인사 좀 받아줘라.”

 

한 명만 빼고. 입학식 때부터 느꼈지만 참 조용하고, 조용한 애다. 숫기가 없는 건지, 아니면 여자가 싫은 건지 나한테만이 아니라 모-든 여자 동기들에게 무심 그 자체였다. 얼굴값을 하는 건지 말수도 적었지만 그 얼굴 탓에 그 점까지 좋게 사주는 사람은 많았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지만. 하지만 대놓고 면전에서 인사를 무시한다던지 하는 행동은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 뭐… 괜찮아.”

 

애써 괜찮은 척 하며 강의실 안으로 쏙 들어왔다. 사실 괜찮지 않았지만 대학에서는 다들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싫은 척 하는 거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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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개강 컨퍼런스 끝나고 개강 파티 있을 거니까 1학년들은 빠지지 말고 참석 해줘~”

 

강의가 끝나고 잠시 남아있게 하더니 학회장 선배가 들어와 공지를 하고 가셨다. 개강 파티! 이것 역시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 중 하나였다. 이제는 당당히 술을 마셔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니 새삼 낯선 경험이었다. 동기들은 궁시렁 거리는 사람 반, 들떠하는 사람 반 이었다. 오늘 재미있겠다며 옆에 앉은 동기와 웃으며 잡담하다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엔 여전히 무심하게 남자 동기들의 말은 철저히 무시한 채 핸드폰만 보고 있는 도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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