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나리오

 

 

▲ ⓒ곽미소

 

 나는 굉장히 약한 사람이다. 내 감정, 내 생각 하나 표현 못하는 겁쟁이다. 하지만 이게 꿈속이라면 좀 더 대담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꿈속에서 까지 내가 겁쟁이여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그 생각에 나는 잠시나마 무서움에 떨던 손을 멈추고 반을 둘러보았다. 다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이런 행동을 한 내가 ‘무섭다’가 아닌, ‘조롱’의 눈빛이었다.

 

“왜 아직도 다들 그런 눈이야?”

 

 내가 이래도 왜 다들 날 무서워하지 않는거야?

 

“너…완전 미친거 아냐? 야, 선생님 불러!”

 

 나를 지켜보던 한 아이가 소리쳤다.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땐 누군가가 날 위해서 큰 소리를 내준 적이 있던가? 아니, 선생님을 불러준 적이 있던가? 꿈속에서도 이런 취급을 당하는 내가 불쌍해졌다. 나는 뿌리 끝까지 이런 삶에 익숙해져 있었나보다.

 

 내가 던진 의자에 맞은 아이가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 엉엉 울고있다. 그 주위를 둘러싼 아이들이 하나둘씩 괜찮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그 시선의 마지막에는 내가 있다. 날 쓰레기 보듯 쳐다보는 시선이 있다. 동정을 받고, 괜찮냐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건 나인데….

 

“쟤 완전 또라이다.”

“몇번 좀 참아줬더니 그냥 미쳤나봐. 지금 상황파악이 안 되나? 가만히 있는거 좀 봐.”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아, 잠이 깨려나보다. 하지만 이렇게 끔찍한 악몽을 꾸고 다시 일어나긴 싫었다. 꿈 속에서라도 이 상황을 모면하고 개운하게 일어나고 싶다.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몇번 휘적이곤 아이들에게 한발짝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아이들은 더러운 것이라도 본 마냥 뒷걸음질 쳤다.

 

“너넨 내가 더러워?”

“…….”

“나는 너네가 더 더러워. 사람 한명 이렇게 만드니까 행복해?”

“뭐? 야, 네가 지금 한 짓을 좀 봐!”

 

 몽롱한 정신이 점점 또렷해짐을 느꼈다. 꿈에 확실히 몰입하고 있다 생각했다. 그래. 나는 지금 꿈 속이고, 이 아이들은 내 꿈속의 엑스트라다. 이 꿈의 주인공은 확실히 나였고, 주인공인 나는 아무런 짓을 해도 현실은 똑같을 것이다.

 

“내가 한 짓?”

“그래! 쟤 지금 우는거 안 보여?”

“네가 나한테 한 짓에 비하면 저건 아무것도 아니잖아!”

 

 큰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꿈인데도 이 상황이 너무 억울해 눈물이 삐죽 나왔다. 숨 조차 고르지 않았다. 호흡이 거칠어진 내가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한 아이가 야, 너…하면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 앞문이 벌컥 열렸다. 잔뜩 화가난 표정의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이 반 분위기를 살피다가 팔을 부여잡고 우는 아이를 한번, 아이들의 중심에 서있는 날 한번 쳐다보았다.

 

“너…조용한 줄 알았더니, 이렇게 사고를 쳐?!”

 

 또 다시 화살은 나에게 돌아왔다.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피해자는 저였어요. 피해자는 저라구요. 저….

 

 내 상황대로 되지 않는 꿈에 더 이상 있기 싫어졌다. 저번에는 어떻게 꿈에서 깼더라. 아, 눈을 감았다 뜨자. 그래, 그러면 다시 현실일거야.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이제 눈을 뜨면 난 다시 내 침대 위에 있을 것이다.

 

“……아.”

 

 하지만, 눈을 뜨자 보이는건 아까와 같은 교실이었다. 뭐지? 왜 꿈에서 깨지 않는거야? 왜…, 이런 끔찍한 꿈에 갇혀야 하는 거야?

 

“따라나와.”

 

 선생님이 낮은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그제서야 난 깨달았다.

 

 여긴 꿈이 아니야.

 

 그 생각을 한 나는 무작정 뛰어서 반을 나왔다. 뒤에서 선생님이 큰 소리로 날 부르는 것이 들렸지만, 무서움에 나는 뜀박질을 멈출 수 없었다. 한참을 달려 집에 온 나는 보기 좋게 질려있었다. 덜덜 떨리는 다리로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괜찮아….”

 

 아무도 나에게 해주지 않았던 괜찮다는 말을, 나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래, 난 이제 다시 꿈을 꿀거야. 나는 지금도 꿈 속인 거고 지금 다시 잠들면 더 깊고, 깊은, 다시 깨지 않을 꿈을 꿀 수 있을거야.

 

 나는, 꿈을 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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