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장르에서 본 캐릭터와 결말
자신의 보스 강사장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으며 조직의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선우는 조직 내 업무와 문제를 빈틈없이 처리하는 능력 있는 일원이다. 어느 날 강사장의 부름을 받고 달려간 선우는 그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는다. 강사장에게는 남들에게 말 할 수 없는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 그의 젊은 애인 희수이다. 누구보다 냉철하고 무정한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희수에게 다른 남자가 있음을 의심한 강사장은 선우에게 자리를 비운 해외출장동안 그녀의 감시를 맡긴다. 그리고 애인이 있는 것이 사실일 경우 그녀를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명령 하에 선우는 희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알 수 없는 그녀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결국 그녀에게 다른남자가 있음을 확인했음에도 두 사람에게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단 약속을 받고, 이 사건을 비밀로 덮는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강사장에게 버림받은 그는 자신을 망신창이로 만든 강사장과 조직에 대한 복수로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한다.
느와르에서 주인공은 대담하고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사건 해결에 있어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냉정하고 냉소적인 성격으로 독단적으로 일한다. 그의 가치관이나 태도는 질 잡힌 공동체를 향하며 불법적인 것과 손을 잡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영화 속 선우의 모습은 느와르 장르의 중심인물과 매우 유사하다. 그는 뛰어난 능력으로 자신의 보스인 강사장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으며 성장한다. 상대 조직 백사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동료 문석을 질책하며 조직의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는 신분상승이나 야심을 꿈꾸기보다 단순한 탐욕이나 성적 욕망에 의해 위험에 빠지게 되는데 보스의 여자인 희수가 그 원인이다. 위 영화를 느와르 장르라고 놓고 볼 때 희수는 여자로서 단순한 소유물이 아닌 팜므파탈의 여성으로 위치되어져야 하지만, 그 부분에 모호성이 있다. 팜므파탈 이라고 함은 치명적인 여자로서 화려한 외모와 선정적인 몸매의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감미롭게 유혹한 후 파멸로 이끄는 전개가 보통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희수가 지적이고 미모를 갖췄다 해도 성적매력을 과도하게 표출하지도 않거니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남자주인공과의 관계를 맺으려고 하진 않는다. 비록 희수가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진 않지만 그녀의 등장자체가 기존 냉철한 성격과 가치관의 소유자인 선우를 변화시키고, 보스의 명령을 어기고 그녀를 살려준 것이 플롯의 전환점이 되었기에 그녀는 단순도구보다 팜므파탈처럼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희수는 성적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여성상은 아니지만, 순수 그 자체로 선우의 감정을 움직이는 인물이다. 항상 밤에 일하며 남들이 하지 않는 어둡고 무거운 일을 하는 그림자 같은 그에게 희수는 밝은 빛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그가 있는 신은 전부 밤에 촬영되지만 유일하게 밝게 대비되는 장면이 바로 희수와 있을 때이다.
강사장 또한 자신과 상반되는 순수의 의미로 희수를 남다르게 생각할 것인지도 모른다. 강사장은 느와르보다는 갱스터 성격이 강한 인물이라 본다. 우선 영화 내내 등장하는 그의 어두운 표정과 의상은 갱스터 장르에서의 캐릭터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 후반, 선우의 추격을 그만 두는 게 어떻냐는 보스의 권유에도 강사장은 강행한다. 그의 대사에서 “조직이라는 게 뭡니까?” “가족이라는 게 뭡니까?” 라는 부분은 갱스터 장르적 성격을 크게 보이는데, 조직자체를 패밀리와 맺는 양가적 관계 대체로 생각하며 갱스터에게 조직은 함부로 벗어날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존재임을 강조한다. 이는 영화 초반에서도 나타나는데 선우와 식사도중 “내가 마누라한테는 말 못해도 너한텐 하잖냐.” 라는 부분은 조직을 단순 사업이 아닌 가족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할 수 있다. 갱의 유대감을 중시하는 강사장에게 선우의 행동은 노골적인 배신으로 간주되고, 이는 선우와 강사장의 관계를 악화, 나아가 가혹한 결말을 불러온다.
영화의 마지막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셰도우 복싱을 하고 있는 선우이다. 유리창건너에는 화려한 조명의 건물들로 빼곡하다. 셰도우는 ‘그림자’를 의미하며 선우가 있는 곳은 호텔 스카이 라운지이다. 그는 지하에서부터 손에 피를 묻혀가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왔고 그 결과 스카이라운지처럼 조직의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복수라는 악과 어둠에 지배당하고 있었으며 빛을 통과하지 못한 검은 그늘이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건물들의 밝은 빛이 하나 둘 씩 꺼진다. 빛이 사라지면 그림자도 존재 할 수 없듯이 선우도 곧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꿈에 관한 내레이션과 모호한 엔딩이 열린 결말의 여지를 줄 수 있지만, 이 또한 느와르장의의 복합적이고, 오픈된 구조의 특성을 가진다. 위 영화가 느와르장르의 특성 하나만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전체적인 플롯과 캐릭터, 전반적인 장르적 요소를 분석해볼 때 느와르적 성격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는 것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