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언어의 자율성이 보장되어 입으로 말하고 귀로 소리를 들어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금방 알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들만이 살아가고 있지 않다. 어딘가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농어인, 시각장애인등 보통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 있다. 수화는 농어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거나, 대화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농어인의 경우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눈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제 3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손짓이나 몸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 그 무언가로써 수화가 등장했다.

 

▲ⓒ연합뉴스

 

수화는 문자언어를 형성하는 철자의 모음과 자음에 따라 손과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시각적 의사소통 수단의 하나인 지문자와 손짓으로 의사를 소통하는 수화로 구분된다. 수화는 쉽게 말해 ‘손으로 하는 대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수화에서 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몸짓이나 표정으로도 의미가 다양하게 바뀔 수 있다. 우리가 보통 말을 할 때 억양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듯이 수화에서도 몸짓이나 표정으로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전달을 할 때 몸짓과 표정을 자신의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맞게 사용해야한다.

 

또한 수화는 농어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보통 사람들과만 살아가는가?” 이 질문에 아무런 생각 없이 “그렇다.”라고 답을 내릴 수 있겠는가? 자신이 살아가면서 농어인이나 시각장애인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할 수도 있다. 만약 농어인을 만나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그 사람이 단지 농어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말을 못한다는 그런 사소한 이유로 그 사람들과 단절하며 살아가야하는가? 나는 그에 대해 동의 할 수 없다. 조금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그 사람들의 인권조차도 달라질 수는 없다.

 

 

아직까지 세상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어떤 이유 하나로 그 사람을 꺼려하고 무시하고 극단적인 경우 경멸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무조건적으로 조금 다른 그 사람들을 꺼려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 다르다는 이유를 받아들이고 그 사람들에게 자신을 조금만 맞춰서 공존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많이 밝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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