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를 고발하다

 

이 밤 속에

그는 굴복하다

그는 굴종한다

그는 굴러간다

이 밤은 좋은 밤

(중략)

 

오 빌어먹을

이 밤 속에

그가 배우는건

허리를 졸라매는 법

(후략)

 -이승훈. <자본주의의 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단편 애니메이션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애니메이션 <EL EMPLEO>(2008) 중

<EL EMPLEO>(2008)는 아르헨티나 감독 산티아고 그라소(Santiago Grasso)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영어로는 <The Employment>, 한국에는 <생산적 활동>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2008년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 2011년 SICAF 국제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102개의 상을 휩쓸어 유명해진 작품이다.

 

영상을 보고 난 뒤 한동안 생각에 잠겨 말을 잇지 못했다. 감독의 상상력에 놀라고 연출력에 놀라고 마지막 장면의 반전까지. 영상은 끝나고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의 삶은 누구를 위한 삶인가.

애니메이션 <EL EMPLEO>(2008) 중

영상은 한 남성의 출근길을 그리며 시작한다. 울리는 알람 소리에 일어나 전등을 켜고 커피를 끓인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장면을 연출한다.

애니메이션 <EL EMPLEO>(2008) 중

전등도, 책상도, 의자도, 옷걸이도 다 사람이다. 길거리를 나가도, 올라가는 승강기도, 타도 다니는 택시도 모두 다 사람이다. 영상은 너무나도 담담하다. 대사도 표정도 감정도 없다.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모습을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게 그려낸다. 노동은 단지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고용되어 사용되는 것일 뿐, 그것에 대해 너무나도 무신경하고 일말의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다.

애니메이션 <EL EMPLEO>(2008) 중

그렇게 누군가의 고용주로만 보이던 주인공은 출근길의 끝에서 반전을 선사한다. 그 또한 누군가의 피고용인이었을 뿐이다. 주인공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쉰다.

 

Empleo는 스페인어로 ‘고용’을 뜻한다. 자본주의 속에서 고용된 피고용인들, 그들을 고용하는 고용주조차도 누군가에겐 피고용인이다.

 

‘나는 갑이며 또한 을이다.’

애니메이션 <EL EMPLEO>(2008) 중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크레딧 이후의 장면이다. 검은 배경에 전등으로 고용된 남자가 서있다. 그는 전등갓을 벗어 한참을 바라보다 바닥에 벗어 던진다. 무감각하고 무신경한 영상의 마지막에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삶은 누구를 위한 삶인가.’

 

 

 
저작권자 © MC (엠씨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