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 용두산 공원 편

'용두산 공원'.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부산 여행코스', '연인 데이트코스'라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고 가본 경험이 있는 공원일 것이다. 우리는 용두산 공원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역사적인 순간들을 그냥 지나친다. 과연 어떤 역사가 이 용두산공원 안에 스며들어 있는가?

 

▲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직접 촬영)

 

  입구에는 '용두산 공원' 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그 위로는 몇 십 개의 계단이 위로 솟구쳐있다. 물론 가운데엔 에스컬레이터가 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없앴으면 좋겠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시간도 절약되고 다리도 아프지 않지만 돌계단을 한 칸 한 칸 밟아서 올라가는 묘미가 없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 용두산 공원입구에 다다를 때의 뿌듯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 전망대 앞에 늠름하게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직접 촬영)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이순신장군 동상과 그 뒤로 쭉 뻗은 전망대의 모습이다. 당찬 기운이 느껴진다. 이순신장군 동상은 우리로 하여금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어느 새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순신장군 동상이 왜 저 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공원입구에 설치되었을까? 그것도 전망대 앞쪽에. 역사적 근거가 있다. 1952년,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공과 충절의 상징인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 남해안으로 칩입하는 왜적을 장악하였지만 1958년 일본으로 퇴각하기 위해 노량진에 있던 왜함을 무찌르다 전사하였다. 이순신은 구국과 충절의 귀감이자 우리나라를 유린한 왜적을 물리쳐 민족을 지켜냈다. 문장력도 뛰어나 '난중일기' 등을 남긴 그를 기리기 위해 기념동상을 세웠다. 부산시는 1980년 9월에 장군의 은공을 영원히 받들기 위해, 당시 부산포해전의 승전일인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정했다. 외세를 당당히 무찌른 그를 입구에 세워둔 이유는 아마도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평안을 기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 부산탑찬가가 적힌 기념비(직접 촬영)

 

   그리고 더 들어가다보면 푸른 용 한마리가 지키고 앉아있다. 그리고 비석에는 '부산탑찬가' 라는 시가가 있다. '여기는 이 나라의 관문 / 국토의 정기가 서려 맺힌 곳 / 백두산 힘차게 뻗어 내린 금정산맥 / 앞바다 푸른 물결 태평양 맞물렸네 / 첨성대처럼 곱게곱게 치솟은 탑 위에 / 높이 올라 저 멀리 바라보라 / ...' 용두산 공원 전망대 탑을 가리키는 말일까. 개인적으로 '우리는 무궁화 피는 나라의 국민 / 조국과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의 키가 여기 세운 이 탑보다 오히려 높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나라 국민의 민족성을 잘 드러내주는 구절이다. 더욱 더 똘똘 뭉쳐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 해병대사령부 기념탑(직접 촬영)

 

  옆길로 가는 길목에는 나팔동상 그리고 이 기념비가 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만 4년간 이 용두산 공원을 기지로 삼았다.  그리고 "무적해병".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해병대 사령부는 부산 용두산에 주둔한 역사를 부산시민과 함께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 기념비를 이 자리에 세웠다.

▲ 전망대에서 본 부산 풍경(직접 촬영)

 

  이 밖에도 많은 기념비와 동상이 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역사적인 순간들을 우리는 기억해야하고 기려야한다. 그들의 용맹함에 박수를 쳐주어야하며 나라를 향한 애국심을 본받아야할 것이다. 숭고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울 수 있고 기념비와 동상을 통해 직접 느낄 수 있는 용두산 공원. 친구,연인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가볼만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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