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정희 대통령이 금지 시킨 노래

 

 

▲ 故 박정희 대통령, 출처 : 위키백과

이 영상을 보여드린 이유는 부모님들이 70년대를 상상하면, 박정희 정권 하에서 경제부흥을 맞아 행복했던 시기 중의 하나라고 말씀들 하신다. 그때를 회상하며 저번 박근혜 대통령이 출마 당시, 박근혜에게 많은 기대를 품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이 돈 없고 가난한 도시 노동자들에게도 행복했던 시기 였었는지에는 우리가 겪어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추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인기 있었던 대중가요들이 유신체제 하에서 어의없는 이유로 금지를 시켰다. 그 당시 시대를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늘 하라던 대로 묵묵히 해야 하는 암담한 현실을 금지곡이라는 것으로 우리는 짐작한다.

 70년대 장악했던 의식의 흐름이 대중들의 일상의 경험, 실천 등을 장악하고자 하였고, 또한 국가에 의한 당대 지배문화를 국난극복을 위한 총력전 체제 정상화를 위해 대중의 정서와 감정적 동의를 이끌어 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민족에 충성하고 민족을 위한 국책영화를 내놓았지만 이는 대중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받았고 영상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청년 문화와 대중문화를 둘러싼 일상화된 검열은 오히려 대중들의 반발을 이끌게 되었다.

 이 당시 좌절, 불안, 우울 등의 영화 및 음악들은 예외 없이 정부의 정신개조 프로그램에 반하였기 때문에 항상 검열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는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수립한 제4공화국으로써, 자신이 만든 ‘통일 주체 국민회의’를 통해 12월 15일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제 4공화국을 출범시켜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또한 이 체제는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이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독재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새마을 운동, 수출 증가로 효과적으로 거두는 듯 하였지만, 도시 노동자의 삶이 악화 되는 등 빈부 격차가 심각해 지는 현상을 이끌기도 하였다.

 결국 이는 1976년 10월 26일 피살 됨으로써 유신 체제는 막을 내렸다.

 이렇듯 우리의 삶을 얘기하는 대중 음악은 늘 그렇듯 국민들을 향해 있고, 국민들의 집단 정서를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하나의 밝은 불빛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유신이라는 명목으로 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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