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표선수다.

텔레비전 - 매스미디어 기술의 승리

▲ 출처= 텔레비전, 동아일보

  텔레비전은 획일화된 기술 매체의 대표적인 예이며, 매스미디어의 기술상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본질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사회현실의 본질에 대한 비판은 빠진 채 감각적으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의 본질적인 이유는 권력에 의한 ‘감시와 처벌’ 때문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시대와는 달리 텔레비전은 현대의 대중매체로서 시대의 중심적인 지배 논리를 보급한다. 텔레비전의 힘은 편리하고 복잡하지 않으며 우리의 생활 속에서 빠질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정치와 경제에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정치적 지배에 대한 체계적인 말을 전파하는 매체로 활용되면서 대중들의 의식을 선도하고 조작하며, 경제와의 관계도 명백한데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모든 콘텐츠는 광고수입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방송제작자는 시청자의 요구와 광고 스폰서의 요구 모두 부합하는 것을 만들어야한다. 

  텔레비전은 정치와 경제에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정치적 지배에 대한 체계적인 말을 전파하는 매체로 활용되면서 대중들의 의식을 선도하고 조작하며, 경제와의 관계도 명백한데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모든 콘텐츠는 광고수입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방송제작자는 시청자의 요구와 광고 스폰서의 요구 모두 부합하는 것을 만들어야한다. 

  이것이 텔레비전이 갖는 대중지향성이며 시청률이 곧 광고 수입이고, 광고수입이 곧 텔레비전을 만들어내는 경제적 이윤이기 때문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문화산업이 대중들의 획일화된 의식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했던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대중음악 - 문화산업 시스템의 미니 콤

▲ 출처=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이클 잭슨, 네이버학문명백과

  대중문화에 대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적 입장은 대중음악에서도 나타난다. 아도르노는 ‘재즈는 소외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한다. 재즈는 엄밀한 의미에서 상품이다’라는 그의 평가는 대중문화 평가와 동일한 평가이다. 

  그의 발언 속에는 재즈에 대한 반감과 함께 자연을 따라하는 습관이 되다시피 한 성질의 일종으로 문화산업 속에서 일정한 효과를 생산하는 우려가 담겨 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미국에서 접했던 재즈는 흑인들이 만들어낸 저항과 새로움의 정신이 많이 퇴색된 1930년대 중후반 이후에 유행한 백인들의 '빅 밴드'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에 대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평가는 그들 스스로 경직된 문화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사회가 이끌어야 한다는 입장의 틀 안에 묶어두면서 대중문화 속에 있는 해방적 기능을 간과하게 했다. 

  한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시대의 재즈가 대중음악으로 클래식을 타락시민 혐의가 있더라도 오늘날 재즈를 감상하는 것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특별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중음악보다 한 시대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은 없다. 대중음악은 공감하기 쉬워 준비된 것들 속에 내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한 대중의 욕망이 대중 스스로 내부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단 특정한 체계의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기획사야말로 대중음악의 동향과 문화산업의 활동을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그 조직은 먼저 대중의 취향을 꼼꼼히 조사한 후 만들어진 대중의 욕망이 보편적인 공감을 얻게 되면 그것은 ‘유행’한다. 문화산업의 체계가 만들어내는 ‘유행’의 감각과 속도는 언제나 소비자의 감각과 소비를 겨냥한다.

선전 -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꽃

▲ 출처= 선전광고, 네이버미술작품

  상품으로서의 문화는 팔릴 수 있는 것이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각종 미디어를 통과하는 순간 더 이상 교환될 수 없는 것, 팔릴 수 없는 것이 된다. 소비자는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라디오에서 음악을 들으며 텔레비전에서는 영화를 볼 수가 있다. 

  대가 없는 소비는 교환법칙 즉 계산순서를 바꾸어도 값이 변하지 않는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으면서도 교환법칙의 체계에 묶여있는 선전과 닮았다. 선전은 그 자체로 소비되지 않지만 선전이 없다면 상품 또한 소비되지 않는다. 

  선전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하나로 묶어주는 주요한 매개체이며 상품을 선정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욕구의 조작과 지배에 대한 문화산업의 모든 것은 선전에 속에 있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배우가 선전하는 화장품은 그 여배우의 미와 화장품의 소비를 같게 만든다.

  또한 선전은 상품보다는 상품의 혹은 상품을 생산한 업체의 ‘이미지’를 선전 하는데 열중한다. 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주입하고 생산하지만, 직접적으로는 나타내지 않는다. 선전은 문화산업과 소비자를 지배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가진다.

▲ 출처= 계몽의 변증법, 네이버북

  문화산업의 위력은 인간에게 현실을 수락하고 긍정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우리 시대의 계몽은 예전처럼 직접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신문과 영화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고 그것들이 매순간 발설하는 메시지 즉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조작하고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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