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삿거리가 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다

 

▲ 출처= 계몽의 변증법, 네이버북

  우리는 흔히 문화산업의 생산주체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향유되던 놀이와 오락 등을 상품화한 문화산업과 각 문화 분야의 전문가들, 예를 들면 작곡가나 연출가, 예술가 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산업의 궁극적인 생산주체는 바로 자본가이며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자본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품화가 될 수 없다.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소비자의 수를 늘리기 위한 모든 전략을 좋은 대책과 방법을 궁리하여 찾아내거나 좋은 대책을 세우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필수적이다. 
 
  이윤을 창출한 대중문화의 주체에서는 소비자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욕구하는 것을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문화산업은 동질성의 특징을 갖는다. 즉, 자본주의적인 생산의 규칙이나 소비의 개념에 어긋나는 것들은 문화상품으로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제외된다. 
  
  소비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취향과 교양의 수준을 파악하여야 하며 소비자의 나이, 성별, 경제력, 학벌, 취향 등으로 세밀하게 분류하여야 수요 혹은 소비 욕구가 만들어진다. 영화의 소비자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운명에 자신의 운명을 투사하며, 문화산업의 생산자들은 자기가 판매하는 상품의 소비자를 세심하게 파악 하여야한다.

▲ 출처= 자본가, 네이버학생백과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문화산업은 다른 무엇보다도 유흥산업이라고 말한다. 유흥은 문화산업 이 존재하기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이제 문화산업은 예술을 소비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유흥을 세련화시키고 상품으로 만들어 간다. 사람들은 노동의 피로를 풀고 생산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유흥이나 휴식을 찾는데, 그들은 문화산업이 만들어 놓은 상품들을 소비함으로써, 한정된 유흥과 휴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대중은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가져서도 안된다. 문화산업이 만들어낸 대량 문화상품의 세례 속에서 개인이라는 관념 또한 환상에 불과한 것이 되는데,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 있다고 믿지만, 그 개성은 보편성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만 인정되는 제한적인 것이다. 획일화된 문화상품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소수의 취향을 뜻하는 ‘마니아’들도 이 체계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문화산업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예술작품은 상품이었다. 작곡가들이나 예술가들이 작품을 팔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예술세계를 인정해주었던 왕족이나 귀족 ‘패트론’을 갖고 있어 그들의 작품이 상품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세기 무렵부터는 자기 이름을 걸고 예술작품을 제작한 작가 스스로가 시장에 자기 작품을 내다 팔게 되었는데, 문화산업은 이런 예술작품의 상품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문화산업 시대가 되면서 예전의 예술작품에는 예술의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작가들의 노력과 현실 사이의 긴장이 있었는데, 그런 예술적 자의식이 사라져 버렸다고 주장한다. 교환가치의 유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가 되면서, 예술작품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효과, 즉 현실에 대한 비판과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가능성의 기대는 사라지고, 얼마나 많은 콘서트와 전시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와 내가 그것들을 돈을 주고 살 수 있을 것 인가에만 집중된다.

 

 

출처: http://blog.naver.com/hongdolry/22029746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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