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8위르겐 클롭 감독은 리버풀 부임 후 단기간에 팀을 바꿨다. 디보크 오리기가 주전 공격수로 나서기 시작했고,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측면 공격수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겼다. 클롭은 부임 직후 선수진 상황에 맞게 4-2-3-1로 팀을 만들었고, 높은 활동량을 요하는 클롭 전술에서 조 앨런, 아담 랄라나 등 선수들의 존재는 큰 도움이 됐다.모든 경기 내용이 달라졌지만 장기전인 프리미어리그에선 부족한 수비력이 발목을 잡았다. 선수진이 허약한 탓에 로테이션조차 가동할 수 없었다. UEFA 유로파리그까지 병행해야 해 희망
2012~2015시즌 초반 부진을 거듭하던 리버풀은 2012년 8월 29일 노리치 시티 원정 경기 5-2 승리를 기점으로 서서히 반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경기력은 여전히 리버풀의 약점이었고, 디르크 카윗, 막시 로드리게스, 앤디 캐롤 등의 선수를 너무 섣불리 내보낸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야심차게 영입한 파비오 보리니의 경기력이 부족했고, 루이스 수아레스만 고군분투할 뿐이었다.누리 사힌의 포지션 문제도 대두됐다. 브랜든 로저스 감독은 사힌을 중앙 미드필더보다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것을 선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우리에게 일상은 사라졌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고, 일부 직장인들은 집에서 근무했거나 하고 있다. 마스크는 필수가 되었고, 약국과 동네 주민센터는 발 디딜 틈 없이 미어터졌다. 대형마트는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까지 펼쳐졌다.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던 프로 축구도 중지됐다. 사실 다른 종목도 뭐 하나 빠지지 않고 리그 개막을 연기하거나 중단했고 취소했다. 유럽에서도 세계대전 때를 제외하곤 장기간 취소된 적이 없던 각국 축구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등 대륙대회를 미뤘고,
2010~2012리버풀 영광의 시대를 이끈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은 7위라는 프리미어리그 성적을 뒤로 하고 팀을 떠났다. 후임 감독은 풀럼 출신 명장 로이 호지슨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스위스 히딩크'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었고, 인터밀란 등 명문팀을 지도한 경력이 있었다. 전 시즌 풀럼을 이끌고 UEFA 유로파리그에서 유벤투스를 격파, 결승전에 진출한 것을 리버풀 운영진이 높게 평가한 듯했다.호지슨은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풀럼 좌측면 수비수 폴 콘체스키를 영입했고, 유벤투스 출신으로 시즌 직전 FIFA 남아공
2005~20102005-06시즌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은 모하메드 시소코, 피터 크라우치와 더불어 페페 레이나, 다니엘 아게르까지 영입했고, 레전드 로비 파울러까지 컴백시키며 리버풀 팬들을 만족시켰다. UEFA 챔피언스리그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진출했다. 리버풀은 2004-05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5위를 기록하면서 4위까지 주어지는 UCL 티켓을 따지 못했는데, UEFA가 디펜딩 챔피언의 대회 출전 여부를 고심하고 있던 중 결국 1차 예선 진출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웃음 지을 수 있었다.리버풀은 해당 시즌 사실상 바닥 수준인
2004~2005(이스탄불의 기적)"Oh ya beauty-! What a hit son! What a hit!"난세에 탄생한 영웅 스티븐 제라드는 호쾌한 중거리 슈팅으로 올림피아코스의 골망을 갈랐다. 당시 해설위원은 흥분에 휩싸여 소리를 내질렀다. 대박, 또 대박이라고 말이다!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에선 5위에 그쳤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엄청난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16강 상대는 독일 명문 바이어 04 레버쿠젠, 리버풀은 합계 6-2로 레버쿠젠을 무찌르고 8강에 진출한다.8강의 상대는 유벤투스였다. 당시 리버풀 선
1985~2004리버풀 창단 100주년을 7년여 앞둔 1985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일어난 헤이젤 참사로 인해 잉글랜드 팀들은 향후 5년 동안 유럽 대항전 출전 금지라는 처벌을 받게 됐다. 사건의 중심에 서있었던 리버풀에는 2년을 추가해 7년의 출전 금지령이 떨어졌다. 이 사건 이후 조 페이건(Joe Fagan) 감독이 은퇴했고, 케니 달글리시(Kenny Dalglish)가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했다.달글리시는 부임 직후부터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선수로서도 세계 최고였던 그는 감독으로서도 세계 최고가 됐다. 부임 첫 시즌부터
1959~1985필 테일러(Phil Taylor) 감독 사임 후 리버풀 사령탑에 앉은 건 빌 샹클리(Bill Shankly) 감독이었다. 허더스필드 타운을 떠나 머지사이드에 도착한 샹클리는 취임 직후 리버풀을 세계 최고의 팀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당시 리버풀은 예전의 영광과 달리 디비전 2(2부 리그격)에서 허우적대는 팀이었고, 샹클리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샹클리가 먼저 손을 본 것은 구단 그 자체였다. 홈경기장 안필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구조적 문제를 손봤고 선수단 역시 물갈이했다. 무려 24명이라는 규
코로나19로 인해 각국의 축구팀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고, 이에 따라 다가오는 여름 이적시장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존재한다.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데 있어 유소년팀 선수와 기존의 방출 대상 선수를 활용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버풀 소속 선수 17명은 계속된 이적설에 휩싸이고 있고, 많은 팀들이 눈독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은 그 17명의 선수들에 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한다.1. 나다니엘 클라인(No.2, DF)트렌트 알렉산더 아놀드란 신예가 등장하기 이전 리버풀 우측면 수
1919~1959데이비드 애쉬워스(David Ashworth) 감독이 리버풀에 도착하고, 제1차 세계대전 또한 막을 내렸다. 정신적 지주 톰 왓슨 감독이 세상을 떠나고 전쟁까지 겹치면서 리버풀은 창단 후 사실상 첫 격변을 맞게 됐다. 전쟁에 참전한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애쉬워스는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는 데 능한 감독이었다. 1921-22시즌 리버풀은 디비전 1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성공한다.왓슨의 후임자로 애쉬워스가 팀을 잘 수습하면서, 리버풀에게는 다시 영광의 시간이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애쉬워스가 돌연 팀을 떠났
'스키퍼'의 의미를 아는가? 스키퍼는 영국 스포츠의 '주장'을 이르는 말이다. 보통 잉글랜드 축구에서 스키퍼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리버풀을 대표했던 주장 스티븐 제라드를 떠올린다. 하지만 스키퍼의 정의는 더 이상 제라드가 아니다. 이제 스키퍼는 제라드의 후임 주장, 조던 헨더슨이다.헨더슨은 2011-12시즌을 앞두고 리버풀에 합류했다. 1,670만 파운드(한화 약 254억 원)의 비싼 이적료였다. 시작은 좋지 않았다. 리버풀 암흑기를 대표하는 네 명을 이르는 사황(찰리 아담-헨더슨-스튜어트 다우닝-앤디
'죽어도 선덜랜드(Sunderland Till I Die)'. 축구 다큐멘터리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작품이다. 잉글랜드 축구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지만, 국적에 관계없이 축구팬이라면 꼭 봐야 할 작품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2017-18시즌을 다룬 시즌 1을 시작으로, 최근 4월 1일 2018-19시즌을 다룬 시즌 2가 발표됐다.선더랜드 AFC는 2016-17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됐다. 우리나라 축구팬들에게는 지동원-기성용이 뛰었던 팀이자 한때 나이얼 퀸, 케빈 필립스라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보
1892~1919바야흐로 1892년이었다. 잉글랜드 풋볼 리그가 자리 잡기 시작하고, 퍼거스 수터와 지미 러브가 영국 파틱에서 다웬FC로 팀을 옮기면서 축구 역사상 최초 유급 선수로 기록된 지 14년 만의 이야기였다. 외람된 말이지만, 이 내용은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로 공개된 영국 드라마 'The English Game'에서도 소개된다.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현재 리버풀 경기장 안필드의 주인은 본래 에버튼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잉글랜드 축구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고 있는 리버풀과 에버튼이지만, 원래 안필드의
▲ 2007-08시즌 더비 카운티와 경기에서 터진 마이클 존슨의 데뷔골현재 많은 축구팬들이 잊은 그 이름을 추억해보고자 한다. 마이클 존슨, '제2의 스티븐 제라드'라는 별명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그의 존재는 잉글랜드 대표팀에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잉글랜드는 제라드-프랭크 램파드 은퇴 후 그들을 대체할 마땅할 미드필더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당시 중위권 팀에서 도약을 꿈꾸던 맨체스터 시티에게도 반가운 프랜차이즈 스타의 등장이었다.존슨의 등장은 화려했다. 2006-07시즌 개막 직후 위건 애슬레틱과 경기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구자철(32, 알 가라파 SC)이 아우크스부르크가 선정한 구단 역대 베스트11에 선정됐다. 1907년 창단 후 113년간 유구한 역사를 써오고 있는 아우크스부르크 팬들이 직접 선정한 베스트11로 그 의미가 깊다.구자철은 2012년 1월 VfL 볼프스부르크 소속으로 임대를 떠나면서 아우크스부르크와 연을 시작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역사상 첫 독일 분데스리가 승격을 이끌었고, 전성기와 UEFA 유로파리그 도전기도 함께했다. 총 5년 6개월 동안 활약하며 155경기 23골 13도움을 뽑아내며 팀에 없어선 안
리버풀은 지난 1월 이적시장을 통해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핵심 코어 3인방 중 1명인 미나미노 타쿠미를 영입했다. 현재 일본 국가대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미나미노는 중앙 미드필더-공격형 미드필더-양측면 날개·최전방 공격수 등 다양한 포지션으로 출전 가능한 '멀티플레이어'이다.미나미노의 영입은 리버풀에게 있어 성공적인 영입이 될 것으로 보였다. 적재적소에 멀티플레이어를 배치할 줄 아는 '명장' 위르겐 클롭 감독의 존재와 선수의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는 저렴한 이적료(725만 파운드, 약 110억 원)가
무더운 날씨에 지쳐있는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밀어낸 사건이 오늘 새벽에 일어났다. 오늘 오전, 20살 이하 한국 축구대표팀이 에콰도르를 박살 내고 결승에 올랐다. 전반 39분, 이강인의 센스 넘치는 패스를 받은 최준이 정확히 감아 찬 공이 골대를 갈랐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팀은 에콰도르를 만나 경기를 펼친 끝에 최준의 골로 1-0으로 승리했다. 이강인이 왼쪽 중원에서 맞은 프리킥 때 상대 방심을 틈타 절묘하게 벌칙구역 왼쪽으로 찔러준 공을 받은 최준이 빠른 속도로 따라잡으며 오른발 슛
여태껏 이런 투수를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이대로 시즌 끝까지 유지한다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는 투수가 될 것은 확실한 수치다. 메이저리그는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로 나눠서 리그를 치른다. 두 리그를 합해서 투수 기록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있다. 류현진 선수의 기록은 8승 1패로 평균 자책점이 1.48이다. 2위의 선수는 2점대 방어율로 격차가 크다. 방어율이 무엇인지 잠시 설명하자면 9이닝 동안 투수가 공을 던졌을 때 몇점을 실점하느냐를 나타낸 수치다. 그러니까 류현진은 9이닝 던질 때 2점을 안 내 준다는 말이다. 류
프로야구 시즌이 막 시작될 즈음 한화이글스 이용규 사태(이하 ’이용규 사태‘)가 발생했다. 이용규 사태는 이미 FA계약을 완료했음에도 팀에 트레이드를 요청한 일이다. 이는 선수의 기본적인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남겼다. 계약이 성사된 것을 인정하지 않고 타 팀으로 이적 시켜달라는 말이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왜 이용규는 이런 선택을 하게 됐을까? 감독과 코칭스태프 간의 불화, 타선 조정에 대한 불만 등 다양한 추측을 남겼다. 이 중에서 설득력 있는 것은 타선 조정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화이글스 한용덕 감독은
주사위는 던져졌다. 유럽 최고의 축구 클럽팀을 뽑는, 챔피언스리그(이하 챔스)의 결승전 두팀이 정해졌다. 챔스의 우승상금은 240억쯤 된다. 축구를 떠나 세계의 스포츠 대회 중 가장 많은 상금을 주는 대회이다. 그만큼 규모가 큰 대회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축구 선수에겐 영광으로 꼽히는 챔스의 결승전에 이번에 손흥민 선수가 속한 토트넘이 올라간 것이다. 토트넘팀 역사에서도 챔스 결승전에 올라간 것은 처음이다. 그런 만큼 이번 결승의 의미는 매우 크다. 토트넘은 결승에 진출하기까지 드라마틱한 장면이 자주 나왔다. 8강전에서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