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은 언제나 건조했다.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히는가 하면 금방 수분을 잃고 말라비틀어지기 일쑤였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고 이게 내 운명이라 여기며 나조차도 만족하지 못할 합리화를 해왔다. 자랑은 아니지만, 한 번도 내가 먼저 다가간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 모두 먼저 나에게 다가와 주었으며, 나의 호감 또는 마음을 얻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맞춰 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그냥. 그러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거나 완강히 거절했다면 차라리 나았을걸. 보잘것없는 나에게
ⓒpixbay 믿음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른다. 믿음은 한번 생기면 놓기 힘들다. 믿음은 가치가 있을까? 믿음은 대단한 걸까? 나는 무엇을 믿고 있을까?흙장난을 하다가 흙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호기심에 계속 흙을 파다 피가 났다. 흙 속에 파묻혀있던 것은 빛나는 보석인 줄 알았다. 흙을 파헤쳐 손에 쥐어보니 유리조각이다. 유리조각을 고이 주머니에 넣어 간직했다. 사람들에게 보석을 주웠다고 자랑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흔한 유리조각을 보고 보석이라 우겨서 나를 이상하게 봤다. 이상한 아이라며 놀렸다. 그럼에
병원 일로 골머리를 앓던 윤영 씨 앞에 성원의 전 여자친구 지연 씨가 나타났어요. 아니, 윤영 씨가 그녀를 찾아갔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를 대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무슨 말을 해도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일 테니까요. 지연 씨 입에서 그 어떤 말이 나와도 이 상황이 윤영 씨에겐 유쾌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지연 씨가 윤영 씨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윤영 씨도 성원이한테 맞은 적 있죠? 전 맞은 적 있거든요."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지연
영화에서 메기가 크게 펄쩍 뛰어오르면 지진이 나거나 싱크홀이 생긴다. 결말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자 친구를 때린 적 있냐는 윤영의 물음에 성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한다. 잠시 뒤 메기가 펄쩍 뛰어오르고, 동시에 성원이 서 있던 자리에 크게 싱크홀이 생긴다. 성원은 싱크홀에 빠지고 윤영은 싱크홀 안을 쳐다보며 영화가 끝난다. 하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상상을 해 봤다. 만약 이때, 메기가 뛰어오르지 않았다면?그래서 싱크홀이 생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상상인데 위의 물음처럼 싱크홀이 생기지 않
나의 세상에는 항상 할머니가 있었다. 대부분 부모님이나 친구를 말할 수도 있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세상에는 할머니가 가장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유치원에 갈 때랑 초등학교 등하교 때는 항상 할머니와 함께였던 것처럼 나의 시선 속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장날이면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가서 특별한 것을 사지 않더라도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하나밖에 없는 외손녀라며 애지중지, 건강한 것만 먹이겠다며 시장에서 가장 싱싱한 것들만 사서 골라오시던 우리 할머니. 시간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나이
기차에 올랐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풍경들이 제 모습을 가지지 못하고 뭉개져 지나간다.기차의 종착역을 알리는 기계음을 몇 번 거쳤을까. 거쳐 온 종착역을 많이 지남에 비례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지나갔다. 너무 빠른 건 아닐까, 조금은 연착되고 지연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착실하게 기차는 앞으로 나아갔고, 영원히 닿지 못할 것 같던 종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비우고, 오직 우리만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기차 안의 답답한 공기가 숨을 조여와도 우리는 버텼다. 견디다 보면 이 기차는
보통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가 먼저 귀에 들어오는 편이야, 아니면 가사가 먼저 귀에 들어오는 편이야? 사실 난 가사는 안중에도 없어. 일단 멜로디가 좋아야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보는 편이라서 “멜로디 때문에 들었는데 가사까지 좋네?”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웃기지? 아아, 또 얘기가 다른 길로 샐 뻔했네. 내가 말하려던 건 이게 아니고. 한 7월쯤이었나? 늘 그랬듯이 볼륨 빵빵하게 키우고 노래를 듣는데 가사 한 소절이 귀에 팍 꽂히는 거야. 강렬하고 조금 시끄러운 노래긴 했는데, 그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가사 때문이었어. 내가
순방향과 역방향 그리고 입석 어쩌면 기차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방향에 앉아 흔히 말하는 화이트칼라가 되길 원한다. 순방향에서 창밖을 보면 내가 가는 목적지를 바라본다. 하지만 역방향은 내가 달려온 길은 보며 계속해서 달려간다. 흔히들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이라곤 하지만 다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모순을 가지고 살아간다. 역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더욱 미래에 대해 갈망한다. 재물 운, 연애 운, 결혼 운, 직장 운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불안으로부터 야기된다
예전부터 기차역은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했다.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곳, 그래서 우리는 기차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모두 다르다.그렇지만 어느 누구에게든 분명히 추억일 거다. 어떤 종류든 말이다. 그 추억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다.기차 맨 뒤 칸에 앉아 창밖을 본 적이 있는가? 예매하다 보니 자리가 없어서 기차 맨 뒤 칸에 타게 된 그날은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인상적이었다.영화처럼 같이 온 일행들은 모두 잠들고 나 혼자 화장실을 가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솨아악….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솨아아아아아… “으음... 뭐....야..."서걱서걱. 간지러운듯한 기분 좋은 이 소리에 누군가가 깬듯하다. 아주 단잠을 꾸었는지 졸린 눈을 부비적, 부비적댄다. 무거운 머리를 받힌 목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한참을 오뚝이처럼있다 겨우 제 중심을 잡는다. “어.. 어!!!”. 분명 꿈에서 깬 것이 맞는데. 뭐지. 이건 현실이지만 꿈만큼이나 달콤해 보여.“에잇!”. 현실이 꿈만큼이나 달콤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 잽싸게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나, 좀 작
기차. 참 낭만적인 단어 같다. 기차하면 여행, 휴식, 여유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니까. 그래, 참 낭만적인 단어. 오늘은 나도 그 낭만 속에 있고 싶다. 창밖 풍경들이 점점 빨리 지나갔다가, 다시 느려지고. 산이었다가, 논이었다가, 마을이었다가.. 끊임없이 변화한다.시간은 야속하리만큼 빨리 흘러, 어느새 벌써 난 어른이 되어버렸고.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발맞춰 달리고, 성장해야 했는데. 풍경도 그런가 보다. 논을 구경할라치면 산으로 바뀌고, 마을을 지나고 있는가 하면 어느새 기차역에 도착해버린다.기차를 타면 여유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엄마를 보러 고향에 가는 길이었다. 그 길에서 나는 첫사랑이라는 뜨겁고도 담백한 사람을 만났다.그 첫사랑은 나와 같은 도시에 살았다.우린 많이 대화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새벽에는 심야영화를 보고 서로의 회사 앞에서 서로를 기다렸다.우리는 도시에 흔한 커플들이 주로 하는 흔한 연애를 하였다.그리고 한순간의 그 흔한 것을 하지 않게 되었다.첫사랑을 만난 것도 한순간이었지만 헤어지는 것도 고작 한순간이었다.얼마든지 줄 수 있고 얼마든지 잃게 만드는 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였다.나는 얻었던 만큼 잃었고 나에게
ⓒpixabay처음과 낯선 은 같은 말인 것 같다. 처음과 낯선 이라는 단어는 때로는 기분 좋아지는 말이며 때로는 긴장되게 하는 말이다. 처음이라는 설렘을 가질 수도 있으며 처음이라는 긴장감도 가질 수 있다. 낯선 또한 마찬가지이다. 낯선 이라는 이질감을 가질 수도 있으며 낯선 이라는 새로움이 될 수도 있다. 설렘과 긴장감, 이질감, 새로움 모두 변화에서 생길 수 있는 것들이다. 낯선 것들은 많다. 처음인 것들도 많다. 나는 낯선 곳, 낯선 시간, 처음 하는 일, 처음 먹는 것을 싫어한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동네가 이질감 들고,
마지막이었다.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겠다고 아득바득 정말 마지막으로 도전한 게 2주 전이었다.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누구보다 열정 하나는 뒤처지지 않으니까, 재능이 있으니까 등등 여러 이유를 핑계 대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남들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줄 때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 오산이었다. 왜? 내가 가진 열정과 노력, 그리고 재능은 ‘나만의 것’이 아니니까, 모두가 가지고 있으니까. 2주 전에도 똑같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남들보다 훨씬 준비를 많이 했으
‘길’이라는 단어를 보면 가수 god의 ‘길’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이 노래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가사에 있다 생각한다. 발길 가는 데로 걷는 종착지 없는 걸음은 개인에게 여유와 상쾌함을 전해주지만 끝없이 종착지 없는 걸음은 불안함과 초초함을 느끼게 한다. 내가 갈 곳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꽤 외롭고 아픈 일이다. 걸어갈 길을 정해 그 길을 걸어도 가끔 이 길이 맞는지 고민이 들 때가 있다. 지금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나에게 옳은 길인지 잘못 가고 있지만 이미 들어서버려 돌아가지 못하고 걸어가고 있는 것은
# 나. 여긴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작은 슈퍼. 내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 날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비 내리는 오후 늦잠을 자고 가게로 출근했다.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니 그 날이 생각났다. 편지 한 통만이 있던 날.나는 인생을 열심히 살진 않았다. 청소년기에 반항도 많이 했다. 난 전문대학에 입학해 친구들과 놀기만 하다가 취업도 못 하고 금전적인 문제로 다시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렇게 집에서 게임만 하고 누워서 지낸 지 3개월쯤이었나? 난 처음으로 부모님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다음 날 아침 빗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다보면 생각에 잠기곤한다. 나중에 뭐해먹고 살지? 결혼은 언제할 수 있을까? 졸업하면 바로 취업할 수 있을까? 그러다보면 출발했던 곳과는 멀리 떨어져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것이다. 정작 중요한건 원하든 원치 않았든 지금의 내 모습에 집중해야 미래의 나도 보인다는 것. 무작정 고민만 한다고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다. 노력하면서 고민하는건 걱정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걱정만 하는건 현실도피일 뿐이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직면해라. 그리고 대책을 세워라. 얼렁뚱땅 '나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뚜렷한 모습보다 흐릿한 모습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게 된다. 어릴 적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방학이 되면 항상 외가댁에 맡겨졌다.동서울 터미널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마을버스를 갈아타면 봉천동 국회 단지 꼭대기에 외가댁이 있었다.할아버지가 항상 터미널로 마중을 나오셨고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으셔서 터미널까지 마중은 힘드셨지만 항상 마을버스 정거장까지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셔서 어두운 정거장에 혼자 앉아계셨다. “총각 얼른 일어나 밥 무라” 매일 아침 알람처럼 할머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 밥상에 앉아 억지로
내 메일함에는 999+라는 숫자가 항상 띄어져 있고 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새로운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뜬다. 그 메일을 처음 확인했을 때는 여느 때처럼 알림을 지우려고 그랬다. 하지만 미리 보기로 잠깐 뜬 메일의 내용을 보고 나는 지울 수 없었다. “잘 지내?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이렇게 연락 남겨. 사실 네가 이 연락을 볼지 확신도 없지만, 혹시라도 네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 ” 너랑 연락을 마지막으로 한 지가 언제였더라 생각해 봤다.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교의 같은 과를 나오면서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인생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펼쳐진다. 다큐 3일이라는 한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 기차를 타고 있으면, 사람들은 곧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뒤돌아 보면 휘어진 길이라고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깨닫는 것이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를 하기도 한다. 다시는 그러지 말겠다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쉽게 바뀔 수 없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힘든 시간을 견딘 후에 보면 힘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벌써 대학을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