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기적인 생물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각자의 상황에 대입해 본인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것이다. 기자인 로버트 라이트는 라는 책으로 모두가 승자가 되는 포지티브 섬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해리는 이것을 포털 뉴스에 대입했다. 포털 뉴스는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사이트가 언론사들에게 기사를 받아 포털 사이트에 배포하여 사람들이 검색을 함으로써 기사를 보는 뉴스이다. 이 포털 뉴스는 초기에는 각광을 받지 못했지만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점차 포털 뉴스 또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신문
국내의 언론은 자유롭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롭지 않다. 많은 가짜 언론에 사람들은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누군가는 가짜 뉴스를 보고 그대로 믿고 누군가는 올바른 뉴스를 보고도 믿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해리는 한국 저널리즘의 정체성 복원과 원칙의 탐색을 위해 북극성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다. 현재 국내에서는 설문조사 방법을 통해 북극성을 찾아왔는데, 답을 하는 모두가 비슷한 경험과 인식 체계로 큰 발전이 힘든 상황이다.일제강점기 때부터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당해왔다. 총독부의 간섭으로 통제당하
“모든 사람은 공부하고 발전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길이다. 그런데 이런 자기발전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파멸시키는 인간 이하의 행위이다.” 한국 현대 기업 경제사를 대표하는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어록이다. 그는 오래전 고인이 됐지만, 그가 창업한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은 여전히 대한민국 기업을 대표하면서 세계적인 대기업의 사세를 유지하고 있다. 김성해 교수도 그랬다. 펀드매니저로 일을 하다가 한국 외환위기를 맞아 파산하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발전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의 유학길에 올랐고,
20년하고도 20일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감옥살이를 한 신영복 선생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억울하게 시간을 보냈다. 우선적으로 나는 나였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대답은 ‘아니’였다. 신영복 선생님은 제한적인 시공간에서도 끝없는 자아성찰과 공부를 통해 우리들이 무엇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며, 어떠한 것을 느끼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찰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생각하던 감옥은 ‘어둠’에 가까웠다. 침침하고 무서울 것만 같고 당장 눈물 이 날 것만 같은 이미지이다. 하지만 신윤복 선생님은
미국은 한국에서 매우 우호적인 우방국으로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자유를 위해 6·25전쟁에 가장 많은 군인을 파병에 우리를 위해 희생해 준 영웅이라고 말이다. 과연 나라 간의 국제관계 속에서 희생정신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의문을 해소해 준 글이 이 초-제국 2등 시민 프로젝트라는 글이다.이 글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미국의 이미지를 하나씩 파헤쳐 보았다. 첫 번째로는 숭고한 희생정신을 파헤쳤는데,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군의 희생정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왜 한국전쟁이
이번 글은 한국의 구조적 전환과 미디어 담론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 사회의 변화를 살펴보고, 그곳에서 미디어 담론이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 다룬 글이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어떤 영향을 받아 자발적 미국 화가 되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국제 표준을 잘 받아들이는데, 또 미국식 가치와 모델을 가져온다고 한다. 또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담론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아 한번 찾아봤다. 내가 찾아본 담론의 정의는 사회의 공적인 부분과 관련되어 여러 경로로 소통되어 다각도로 나누어지는 '이야기'들
포털사이트, 우리가 인터넷에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입구이다. 우리나라는 그중에서도 네이버나 다음, 크롬 등 제한적인 포털사이트들만 이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포털 권력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포털사이트 네이버나 다음은 다양한 주제와 활동들을 한 번에 볼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다. 이는 사람들이 포털을 통해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고 쉽게 뉴스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포털은 이해관계자들이 많아지고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포털을 게임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즉 게임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부작용이
인터넷 개인 방송은 어렸을 적부터 오랫동안 봐왔다. 특히 내가 2001년생이라 개인 방송이 막 뜨기 시작했을 때 접한 사람이라 기억이 강렬하다. 그런데 강렬하다고 해서 개인 방송이 엄청나게 수위가 높고 그랬는가? 딱 초창기 시기에만 그랬던 것 같다. 그때는 개인 방송뿐만 아니라 SNS도 크게 규제가 없었기에 신태일이나 철구 등의 사람들이 일반인들은 하기 꺼려 하는 간장 샤워나 겨드랑이로 비벼서 밥 먹기, 차바퀴에 다리 깔리기 등 여러 기괴한 행동을 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행위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현재 미디어가 우리 삶에서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언론 또한 미디어를 중요한 수단이라고 여기고 있다. 단순히 신문, 뉴스로 보는 것만이 아닌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유튜브, 인터넷 등 다양한 측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디어에서의 언론 역할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우선 쉽게 언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처럼 신문을 사서 종이를 넘기는 불편함 없이 단순히 손가락 하나로 스크롤을 내리며 정치, 각 세상의 주요 이슈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단순히 글로만 써져 있는 것이 아닌, 영상 뉴스 또한 많이 접할 수 있기 때문
당장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나는 하와이로 향하고 싶다. 방학 중에 읽었던「섬의 애슐리」라는 책의 배경이 하와이로 나오는데 아름답게만 느껴질 수 없는 내용임에도 배경 장소가 궁금해졌다. 직접 하와이로 가서 그 땅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하와이 해변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 깊은 곳의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 볼 점은 내가 수영을 못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수영 강습을 수강하게 되었다.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1) 마우이 2) 하나우마 베이 3)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 3곳이다
이번 글은 인터넷 개인 방송에 대한 글이었다. 국 내외에서 개인 방송에 대해 법적인 규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또 어떤 식으로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담은 글이었다. 개인 방송이 우리에게 찾아온 지 몇 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도기적인 많은 쟁점이 존재했다.내가 이 글에서 본 첫 번째 쟁점은, 규제를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지, 법적으로 단단히 규제해야 하는지다. 자율적으로 규제해야 된다는 쪽의 근거는 개인 방송이 주류 방송과의 차별점이 높은 자유도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주류 방송보다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은 역사 시간에 꽤 들어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렴풋이 기억하기엔 군사독재 시절에 이 법을 악용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보안법에 붙잡혀 고문을 받은 사람도 존재했고, 이에 따라 많은 피해자가 고난을 겪었다. 이런 사실들을 학교 교육시간에 배웠었다. 현재에도 이 법이 존재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고, 이것이 왜 아직도 남아있는지 몰랐다. 이번에 읽은 글은 그런 국가보안법에 관한 글이다.이 글의 시작은 국가보안법의 변천사에 대해서 말한다. 여기서 자세히 봤던 부분은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이 생각은 변함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는 몰랐다. 누군가 나에게 ‘왜?’라고 물으면 정확히 대답할 수 없을뿐더러 생각나는 대답은 ‘그냥’이다. 여태 여기서 살아왔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익숙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내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대한민국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오히려 타국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었으면!’하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다. 막상 거기서 살고 싶어 하진 않지만,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의 문화를 부러
‘알쓸신잡’, ‘벌거벗은 세계사’, ‘차이나는 클라스’ 같은 교양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나 역사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할 때 푸코와 일제강점기를 접목하여 설명하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미셸 푸코와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자. 미셸 푸코랑 일제강점기를 접목시키기 위해 푸코에 대한 이야기 중 광기의 역사를 말해보고자 한다. 광기의 역사는 먼저 1단계, 2단계,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광인들을 감금하고 억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광인들을 왜 감금하고 억압했냐면 권력을 가진 이
“한국 언론사”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저 유명한 언론사들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일명 “조중동” 이 메이저 언론사들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생각해 보면 한국 언론이 언제부터 정치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지, 투명성, 공정성과 같은 신념을 잃어버린 시기는 언제부터였는지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논문을 읽고 더 놀란 것은 언론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나라 민주화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그럼 그 시기부터 언론이 지켜야 할 중요한 신념들이 나온 것일까? 6·29 선언 제5장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
“북극성?” 첫 단어를 보고 이게 저널리즘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논문을 읽어보며 왜 논문 제목을 북극성이라고 지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바로 좌표를 찾는 것이었다. 길 잃은 자들이 북극성을 좌표 삼아 앞으로 나아가듯이, 언론 또한 현재 그 좌표를 찾는 탐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언론이 과연 공정성, 투명성, 공익성 등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을까? 항상 정치 영화를 보면 언론사가 등장하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하지만 신념에 가득 찬 개인 언론인들 같은 경우 항상 고난에 부딪힌다
이번에 읽은 글은 프로파간다, 즉 선동에 관한 글이다. 이 글의 문제 제기 부분에서는 북한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에 대해서 말한다. 어버이 수령에 대한 찬가를 이야기하고, 북조선이 걸어가는 길은 어버이의 나라로 가는 길이다.라고 말한다. 북한에서의 노래와 음악은 체제 유지와 우상화를 위한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북조선 스스로가 문예의 수단화를 적극적으로 천명한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다른 문예예술을 살펴보면, 그 사명은 당의 사상과 의도를 인민의 심장 속에 심는 것에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작권이란? 창작물을 만든 이가 자기 저작물에 대해 가지는 배타적인 법적 권리로, 만든 이의 권리를 보호하여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최근 들어 1인 미디어 시장도 확대되고 있고, 여러 가지 미디어 플랫폼의 발달로 인해 개인이 만든 창작물을 접하기도 매우 쉬워졌다. 따라서 저작권에 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만화, 음악, 소설, 게임 등등 여러 가지 창작물들을 불법 다운로드 및 복사를 통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사용했다. 하지만, 현재에는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러다이트 운동이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영국의 공장지대에서 일어난 노동자에 의한 기계파괴운동을 말한다. 산업 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영국의 노동자들이 실업의 원인을 기계 때문이라고 여겨서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 당시에는 기계라는 것 때문에 노동의 신성함을 잃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에는 기계가 무조건 잘못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현대에는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어느 정도 뺏어간 것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사람이 해야 할 것들도 많다. 그러나 당대에서는 기계가 오로지 인간의 노동을 뺏어갔다고
1. 머리말 약 249개국의 나라 중에서 우리나라는 경제 순위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 10위 정도 될 것이다.라고 답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1910년에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1945년에 해방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한국의 6.25 전쟁은 3년 동안 일어난 나라인데 어떻게 10위가 될 수 있었을까? 그때 당시 모든 나라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알았을까? 아니다. 당시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렇